“이런 게 강남에?” 서울의 마지막 개농장 구조하던 날 [개st하우스]

“서울 강남의 재개발구역에 불법 개농장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다른 주민들은 이주 보상금을 받고 떠나는 때 오히려 견사를 짓고 개들을 키운다고 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요. 찾아가서 물어보니 농장주 말이 개농장을 운영하다 포기하면 정부에서 폐업 보상금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견사를 지었다더군요.”

지난달 4일 이른 오전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재개발지구. 어귀에서 들여다본 골목은 대낮인데도 해가 들지 않아 두더지 굴처럼 어둡습니다. 양편으로는 지붕에 양철을 얹은 1960년대식 움집들이 옹기종기 100m 넘게 이어집니다. 움집들 외벽에 붙은 건 철거 계고장. 낡고 찢어진 노란 계고장은 지붕 너머로 보이는 평당 1억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단지와 묘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멍.멍.” 골목 끝에 가까워지자 한파에 얼어붙은 듯 힘없는 개 짖음 소리가 들립니다. 녹슨 철망을 흙바닥에 대충 꽂아 만든 견사 내부에 중·대형견 10여 마리를 가둔 불법 개농장입니다. 농장주는 재개발이 결정된 뒤 2년 가까이 정부 당국에 개농장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해왔습니다. 동물을 볼모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동물 알박기’입니다. 사육을 목적으로 한 농장이 아니었으니 제대로 된 돌봄이 이뤄졌을 리가 없겠죠. 그 사이 고통받은 건 개들이었습니다.


재개발지구를 찾은 이날은 드디어 농장 개들의 불행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버티던 송씨가 동물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불법 개농장을 폐쇄하던 날. 보상금을 노린 동물 알박기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개들을 보듬은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문제의 개농장을 처음 발견한 것은 직장인 이현정(38)씨입니다. 2년쯤 전, 지인의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기 위해 구룡마을 판자촌을 둘러보던 중 뜻밖에 서울 한복판에서 개농장을 발견한 겁니다. 수십억원짜리 아파트들이 즐비한 강남구 복판에 개농장이라니. 서울의 마지막 개농장으로 추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철창 속 개들의 상태였습니다. 1m도 안 되는 짧은 쇠줄에 묶인 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느라 개들은 짖을 기운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다른 주민들은 재개발을 앞두고 대부분 떠났는데 개 농장주는 재개발에 속도가 붙은 시점에 오히려 견사를 지었습니다. 현정씨는 농장주라는 70대 송모씨를 찾아가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알고보니 송씨가 노린 것은 국가 보상금이었습니다. 근거는 축산법과 2027년 시행될 개식용종식법 두 가지. 이들 법에 따라 재개발지구 내에서 동물을 기르는 축산농가와 폐업하는 개농장이 보상받을 수 있었거든요. 송씨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 개를 이용한 ‘동물 알박기’를 시도한 겁니다.

물론 송씨 계산은 틀렸습니다. 송씨와 같은 불법 농장주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정부 보상금은 정식 등록된 농가에만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5년도 개사육농장주 등 전폐업 지원사업 시행방안’에 따르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된 개농장에만 폐업지원금이 제공됩니다. 축산법에 의한 보상금도 마찬가지죠. 영업 신고된 축산농가에만 적용됩니다.

현정씨가 이런 점을 설명해도 송씨는 막무가내였어요. 공문서로 정식 통보를 받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현정씨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강남구청의 도움을 받아 농장주를 설득하는 한편, 강남구 반려견순찰대 등 지역 주민들과 봉사팀을 꾸려 매일 물과 사료를 주며 개들을 보살폈습니다. 지난해 12월, 드디어 강남구청이 나섰습니다. 보상 주체인 농식품부, 서울주택도시공사 등에 문의해 불법 개농장은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확답을 받아내 송씨에게 통보한 겁니다. 마침내 송씨가 소유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2년에 걸친 동물 알박기는 중단됐습니다.


소유권을 넘겨 받았으니 개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순서입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였죠. 몇 마리는 임시보호처를 찾았지만 12마리의 개는 여전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난달 마침내 동물단체 한 곳이 나섰습니다. 동물단체 코리안독스(KDS)입니다. KDS 김복희 대표는 “비록 저희도 포화상태이지만 2년간 개들을 돌봐온 봉사자들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달 4일 이른 오전, 개st하우스는 KDS와 함께 개포동 개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부족한 일손을 보태기 위해 강남구청 동물보호팀과 강남구 반려견순찰대 시민 10여명이 동참했습니다.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구조용 보호장갑, 이동장 등을 들고 합류하자 이들 시민 봉사자들은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구조팀은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미로같은 판자촌을 가로질러 문제의 개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보자 개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철창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반가워하는 백구, 겁먹고 구석에 숨은 갈색 믹스견. 구조대원들은 견사로 몸을 구겨 넣은 뒤 비좁은 견사에서 평생을 보낸 불쌍한 녀석들을 하나둘 품에 안았습니다. 대부분의 개들은 이동장에 몸을 싣자 금세 얌전해졌습니다. 그중 이름처럼 온순한 백구 순둥이는 산책줄을 차고 마치 나들이하듯 철창을 빠져나왔습니다.

끝으로 구조팀은 개들을 담은 이동장을 들고 판자촌을 빠져나왔습니다. 30㎏넘는 이동장을 두세 명씩 나눠 들고 길고 비좁은 골목을 지나야 했는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조된 개 12마리는 현재 KDS가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 입양센터에서 지내며 중성화 수술을 받고 사회화 교육을 마쳤습니다.


힘겨운 구조 이후, 개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난달 24일 개st하우스는 경기도 용인의 KDS 입양센터를 방문했습니다. KDS 김복희 대표는 입양 준비를 마친 주인공이 있다며 2살 백구 순둥이를 소개했습니다.


순둥이는 그새 활동가들과 정이 많이 들었더군요. 활동가의 손이 닿자 빙글빙글 춤을 추거나 제자리에 앉아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날 생전 처음 행동교육을 받았는데 ‘가자’ ‘멈춰’ ‘앉아’ 등 구령을 30분 만에 습득했습니다. KDS 지연지 동물관리팀장은 “순둥이는 성격이 유순하고 영리해서 정이 참 많이 들었다”며 “농장개들 중 가장 먼저 입양을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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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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