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선 칼럼에서 이야기한 게임 중독에 빠져 폭력성을 보였던 남자 중학생 B군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B군은 치료 동기가 없었다. 그래서 치료의 필요성을 가르치기보다는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의 삶에서 몰입했던 또 다른 사례인 ‘블록 조립’ 속에서 느꼈던 성취감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블록 조립을 해냈을 때의 느낌,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내게 했다. 그 당시의 성취감이 게임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그 느낌의 지속성에서는 블록 조립이나 게임에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동기 유발은 치료의 시작에 불과하다.
대부분 부모가 그러하듯이 B군의 부모도 “너 그러다가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고 윽박지른다. 심할 경우는 “중독에 빠지면 노숙자가 될 게 뻔하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말인가?”라는 말로 겁을 준다. 이러면 충격을 받아 각성하게 될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충격을 받아 게임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빠져들게 된다. 왜 그럴까?
게임 중독에 빠져드는 대부분 심리는 ‘회피’다. 현실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가상현실 세계로의 회피도 있지만, 불쾌한 감정 즉 불안, 좌절감, 우울 등의 감정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단연 세계에서 꼴찌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 지 누구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대부분은 공부에 올인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승자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래는 딱히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안, 좌절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열심히 해도 안 되면 차츰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거야” “나쁜 감정은 빨리 떨쳐버릴수록 좋아”라고 암암리에, 아니 명시적으로 교육돼 왔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일까? 불쾌한 감정을 없애는 게 가능한가?
만일 누군가 당신 몸 불안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고 정수리에 권총을 들이밀면서 “당신의 불안감이 장치에 표시되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살려준다”라는 실험을 한다고 치자. 이런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선 그 불안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해보나 마나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을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은 빨리 벗어날수록 좋다’고 길들어진 아이들에게는 좌절과 불안을 견디어 낼 힘이 없다. 어릴 적부터 아이가 좌절감을 겪거나 우울해하면 ‘초콜릿이나 즐거운 활동’으로 위로하며 양육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아이가 힘이 들 때는 공감해주고 마음을 읽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을 읽어 주는 것의 목적이 힘든 감정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그 부정적인 감정을 명확히 알아차릴 힘을 길러 그 감정을 더 잘 견디고 품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공부로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바엔 차라리 게임으로 회피하는 편을 선택한다. 또 좌절에서 느끼는 분노나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 부모의 일명 ‘충격 요법’이다. 사실 ‘충격 요법은 행동 치료의 한 종류로 혐오 자극을 주어서 혐오 자극을 회피하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소거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말을 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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