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문중 당제

Է:2025-02-03 15:30
ϱ
ũ

매년 동절기가 다가오면 집집마다 땔감을 준비한다.
대가족인 우리 집은 조부모님 방을 비롯해 방마다 군불을 때야 하기 때문에 가을철이면 분주하다.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땔 나무를 충분히 쌓아 두어야 했다. 이웃집 쌀독 사정은 그 집 굴뚝이 알려 준다는 말이 있다. 굴뚝은 세상과 연결된 통로이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길이 이어지면 온 집안에는 온기가 느껴진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굴뚝에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뛰던 때를 기억한다.

어느 산을 뒤져야 엄동설한을 이겨낼지 밤잠을 설치며 근심하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가을 소풍 갔을 때 얘기를 했다. 산속에서 보물찾기를 하다가 발견한 김씨 문중 선산 제실 앞에 제복을 입은 어른들이 즐비하게 서서 제사 지내는 것을 보았다. 입구부터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만큼 우람한 수목이 우거져 있었다. 그 아래로 고목이 겹겹이 쓰러져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땔감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최고급 땔감이 그곳에 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너무 신나서 실감 나게 얘기를 하자.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어머니는 놀라시며 내 손을 덥석 잡고 뒤뜰로 갔다.

예부터 당나무를 집에 들여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나무를 땔감으로 썼다가는 집안에 큰 변이 생기고 불구를 입은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엄동설한 겨우내 냉방에서 온 식구가 동상에 걸릴망정 당나무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에 고목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산속에서 죽어 쓰러진 나무를 갖다 때는 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말로 겁을 주는 것 아닐까. 하나님을 믿으니 맘 놓고 새벽에 거기에 가 보자고 나는 어머니를 졸라댔다. 여러 날 설득하자 “내 딸은 왜 이리 겁이 없을까?” 하시며 꾸지람을 하시더니 나중엔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었다.

깊은 가을밤,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큰소리는 쳤지만 만약 조부모님과 오빠들이 알게 되면 나를 가만히 두겠는가. 나는 어디론가 쫓겨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행여 이 일이 탄로 나면 유일한 나의 변호인인 엄마의 입장은 또 어떻게 될지. 밤이 깊었는데 오랜만에 교회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 3시쯤 두 손을 모으고 예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다.

“하나님, 언제나 내 편이던 엄마도 두려워합니다. 저를 도와주소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교회에 인기척이 없는 시간에 혼자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교회 왔다는 소문이 나면 오빠들이 쫓아오고 집안 난리는 1·4 후퇴를 방불케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오직 어머니의 근심을 덜어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가족에게 들통나선 안 되고 우리 집안에 절대로 우환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에게 큰 믿음을 주시라고 나는 기도를 했다. 섬 지방은 끼니를 거르면서도 제사에 몰두하고 제사상에 온 정성을 다한다. 우리 집은 정성껏 제사를 모시는 집으로 유명했다. 1년이면 열두 번의 제사가 있었다. 제례에 묶여 살았던 우리 가족 틈바구니에서 어머니 청춘은 다 닳아 버렸다. 새벽 달빛을 전등 삼아 어머니와 함께 걷던 날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우리 희망이 무엇이냐.”라고 노래를 부르시다가 재치 있게 개사를 했다. “당나무 들여와 아궁이에 불붙일 때 당 귀신들이 한꺼번에 다 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을 흘렸다. “귀신은 죽지 않는다. 영벌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계속 사람들을 괴롭힐 거야. 그 일만이 그것들의 밥값이니까.”

“유황불에서 영원히 탈 귀신들. 어머니, 아마 몇 날 며칠은 탈 거예요. 귀신이 너무 많아서요. 외할머니가 독실한 신자시니까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실 거예요.”라고 위로했다. 내가 밤마다 교회를 찾아 기도하는 것을 아시고 나를 꼭 안아 주셨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듯이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 얘기를 들려주셨다. 몇 차례를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었다. 어리지만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아직 아무 인적이 없는 새벽에 당제를 지내던 그곳에 도착했다. 깊은 가을밤 화려한 제사상, 넓은 바위 위에 그득히 과일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서툴지만 또박또박 기도했다. 사도신경을 외우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십계명을 외워 드리니 어머니가 날마다 네가 믿는 하나님께 나도 기도한다고 고백했다. 제사상에 차려진 과일이 이슬에 흠뻑 젖어 있었다. 다람쥐나 들쥐들도 당 제물인 줄을 알았는지, 두려워 떨려서 입을 떼지 않고 방금 차려 놓은 듯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깨끗해진 것을 믿어서일까.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나는 가족들 몰래 하루에도 오륙십 장씩 성경을 읽었다. 성경 말씀에도 몸 밖에서 들어간 것은 모두 깨끗하고 사람 속에서 나온 것들이 더러운 것이라고 했더니 딱 맞는 말이라고 어머니는 신기한 듯이 성경 말씀이냐고 물으셨다. 이 사람들은 제사 지내고 다 싸 들고 갈 것이지 이 비싼 것들을 왜 두고 갔을까. 우리 먹으라고 좋은 것으로 차려 놓은 것이다.

“이 과일들을 먹어야 마음에 담력이 생길 거야.”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으며 천진한 소녀처럼 새끼손가락을 내밀면서 약속을 구했다. 이 일은 평생 비밀로 하자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설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마음에 접어 넣었다. 집안에 무슨 병고라도 생긴다면 당나무 사건은 평생을 두고 원망 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곶감과 과일을 실컷 먹고 또 보자기에 싸 들고 나무 한 짐을 머리에 이고 그렇게 돌아왔다. 우리가 과일을 앞에 두고 깨끗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우리 모녀에게서 모든 두려움이 물러가 버렸다.

하나님이 베푼 축복이었을까. 불구자 된다던 협박적인 말은 사라지고 밤마다 콩 자루에 발을 담그고 고생하던 동상도 깨끗이 나았다. 나는 어린 나이에 모유를 한 방울도 못 먹어서인지 치명적인 신경통을 앓았는데 당나무를 때고 따뜻한 겨울을 보낸 이듬해에 씻은 듯이 나았다. 어머니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당나무는 딸의 고질병을 고치는 약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감사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팔순이 넘어 돌아가셨는데 그날 상여 뒤에 큰 손녀인 내가 술상을 머리에 이고 따라가야 한다. 그때도 어머니는 나를 불러 너는 우상에게 절하면 안 된다고 이십 리 밖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어머니는 그때 벌써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교회 출석을 못 하셔도 늘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던 어머니는 세례교인으로 84세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대하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어머니의 삶, 아름다운 성품과 덕행으로 살아온 어머니였다. 우리 육안으로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한 영접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셨음을 믿는다. 임종을 지키는 형제들 앞에서 어머니는 내게 최고의 유언을 남기셨다.

“국애야, 천국에 가서도 널 위해 기도할게.”
어머니는 세상 어떤 보물보다 더 소중한 유언을 내 가슴에 담아 주고 떠나셨다.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하신 지 어언 22년이다. 오늘은 손가락 걸고 언약했던 1급 비밀에서 내가 해방된 날이다.


<어머님 전 상서>
-김국애

어느새
석양노을 붉게 물들고
하염없이 높던 먼 하늘이
가슴 앞까지 내려앉았다

뒷동산에
숲과 나무들도
내 시선 가까이로 다가왔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던 그날은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별빛을 바라볼 염치도 없는데
적막을 깨고 구슬프게 들려온 메아리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저만치서 손 흔드는 어머니
나의 수호천사

현숙한 나의 어머니
엄마의 멍든 가슴을 댓돌처럼 밟고 서서
용서받기에 너무 늦은
어머니 묘소 앞의 오후

폐륜의 죄
씻을 길 없는 죄 대신 지고
돌아올 수 없는 길 떠난 어머니
손에 잡은 것 다 내려놓아야 가는 곳
엄마의 영원한 천국에 편히 쉬소서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Ŀ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