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5년 전 제가 인근 섬 소안도 지역을 돌아보려고 갔다가 목이 말라서 소안도 읍내에 다방 간판이 보이길래 들어갔습니다. 다방 안에는 몇 명의 여자분들이 앉아 있었고 “어떻게 왔느냐”고 묻길래 “목이 말라 커피 한잔하려고 합니다” 했더니 저를 아래위로 살펴보더니 “무슨 일을 하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길도에서 온 교회 목사입니다” 했습니다. 그러더니 “목사님, 잘못 오신 것 같습니다. 여기는 그런 커피 파는 집이 아닙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보길도에는 배로 10분 거리에 인구가 비슷한 섬이 3개 있습니다.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된 노화도 소안도 넙도가 그 섬들입니다. 모두 면 단위입니다. 그중 노화도는 읍 단위에 같은 생활권에 있습니다. 5일 장이 열리는 곳으로 병원과 은행 등 모든 편의 시설이 다 있습니다. 옛날 김 양식이 호황을 누릴 때는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니는 ‘작은 목포’라고 불렸다 합니다. 지금도 노화도에는 미장원이 10개가 넘고 카페가 10개, 노래방이나 술집도 여기저기 많습니다. 그중에는 옛날 간판에 ‘다방’이라 써놓은 곳도 아직 5개가 있습니다.

농촌 목회를 하려면 그 고장에 중요한 시설과 특별한 환경을 알고 대처해야 능동적인 전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주는 곶감, 영양은 고추, 대관령은 고랭지 배추, 김제는 쌀 등 지역 주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농작물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면에도 관심을 가지고 전도 전략을 펼쳐가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섬 지역에도 각기 다양한 어업과 어종이 어부들의 수입원이 됩니다.
오늘은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다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40년 전에는 노화도에 다방이 무려 30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 다방은 옛날 도시에서 남녀 청춘들이 만나고 선보던 그런 낭만적인 업소가 아닙니다. 한 가게에 10여명 정도의 직업여성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도시에서 주인에게 갚을 길 없는 빚을 지고 있다가 섬에 있는 업주들이 그 빚을 떠안아준다고 해서 섬으로 왔다가 정착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빚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요즘 어부들은 작은 배를 이용해 부인과 둘이서 조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선주가 있고 배 안에 과학적인 시설이 없어서 모두 수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또 많은 일꾼이 필요해 도시 사나이들이 섬에 와서 배에서 먹고 자면서 큰돈을 벌려는 야망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주들에게 선금을 받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출항하지 못하면 돈을 몽땅 다방에서 쓰고 다시 빚을 늘려서 바다로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방 종업원과 어부는 똑같은 적자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곳 용어로는 ‘같은 급의 인생들’이라 평합니다. 제가 다방 종업원과 어부 사나이들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닙니다. 섬 목회자가 그들을 품고 가야 할 현실을 설명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니 이렇게 서론을 말한 것입니다. 행여나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함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목회자로서 섬에서 살아가면서 전도 대상자들의 눈물과 아픈 사연들을 종종 마주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을 안은 채 교회로 달려와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들의 이런 뒷모습을 보면서 목회의 벽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수백 명의 다방 종업원들이 섬에 와서 몇 달 안에 도시로 나가지만 그중에 더러는 늦도록 장가갈 기회를 얻지 못한 어부 노총각들과 가정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중 20%는 말 그대로 새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어부의 아내가 되어 바다에 달려들어 손이 부르트게 일해 지금 부자가 된 가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은 출발 조건은 비슷한데 결국 가정도 실패하고 그로 인해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살아가는 현실이 섬이기도 합니다. 어부들의 삶을 살피고 돌봐야 하는 목회자로서 목회 일기가 언제나 좋은 이야기로만 이어지지 못하고 아프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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