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재거와 파괴적 사랑…60년대 팝 아이콘 마리안느 페이스풀 별세

Է:2025-01-31 13:18
:2025-01-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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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마약 중독과 노숙으로 바닥까지 갔다가 재기에 성공

마리아 페이스풀의 1966년(왼쪽)과 2008년 모습. 퍼블릭 도메인

1960년대 영국 팝의 요정으로 불린 가수, 작곡가 겸 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78세로 별세했다. 3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페이스풀의 대변인은 “마리안느가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부모의 이혼으로 수도원에서 자란 페이스풀은 17세이던 1964년 영국 록 밴드 롤링 스톤즈의 데뷔 앨범 기념 파티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영화 제작자 로버트 던바의 아들 존 던바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게 된다. 그런데 이 파티에서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 앤드루 루그 올드햄의 소개로 만난 밴드 멤버 믹 재거와 키스 리차즈가 페이스풀을 위해 작곡한 ‘눈물이 흐르면서’(As Tears Go By)가 히트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페이스풀은 ‘이 작은 새’(This Little Bird), ‘여름밤’(Summer Nights), ‘루시 조던의 발라드’(The Ballad of Lucy Jordan) 등의 앨범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귀엽고 청순한 외모에 패션 아이콘으로도 높은 인기를 누린 그는 1968년엔 영화 ‘오토바이를 탄 소녀’의 주연을 맡아 배우로도 각광받았다.

마리안느 페이스풀(가운데)가 2008년 믹 재거 등 롤링스톤스와 함께 있는 모습. 퍼블릭 도메인

문제는 페이스풀이 남편과 이혼하고 19세인 1966년부터 재거와 동거하면서 발생했다. 여성 편력이 심한 재거를 만나 마약에 빠지면서 온갖 스캔들 메이커 된 것이다. 결국, 페이스풀은 재거의 아이를 유산한 이후 1970년 결별했다. 하지만 재거와 헤어진 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그는 런던에서 2년간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1979년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표해 재기에 성공했고 1981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또 재즈와 블루스로 방향을 틀어 1987년 ‘이상한 날씨’(Strange Weather)를 발표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청아한 듯 묘하게 우울한 페이스풀의 목소리에 대해 가디언의 팝 평론가 알렉시스 페트리디스는 “페이스풀의 목소리는 노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갈망적이고 우울했다”고 평했다.

페이스풀의 별세에 동료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수 겸 슈퍼모델 카를라 브루니는 인스타그램에 “내 친구여, 천사들과 함께 편히 쉬어라”고 추모했다. 또 그의 연인이었던 재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페이스풀과 찍은 흑백 사진을 올리며 “그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다. 그는 훌륭한 친구,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 항상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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