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연극계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단연 ‘타인의 삶’(~내년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이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감독한 동명의 독일 영화를 무대화한 이 작품은 1980년대 동독 방첩기관 슈타지의 비밀경찰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인 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다뤘다. 국내 연극 제작사 프로젝트그룹일다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 도너스마르크로부터 판권을 획득해 연극으로 선보이고 있다.
2007년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던 수작 ‘타인의 삶’은 연극으로도 한국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연극이 인기를 얻으면서 원작 영화 다시 보기로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또한, 11월 말 개막 직후 한국을 찾은 도너스마르크도 연극에 만족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이번 작품의 성공에는 이동휘와 김준한을 포함한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연극에 걸맞은 각색과 연출을 보여준 손상규의 공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연극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공동창작 집단 양손프로젝트의 멤버인 그는 배우로서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 다양한 화제작에 출연해 왔다.
양손프로젝트는 손상규를 포함해 배우 양종욱 양조아, 연출가 박지혜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문사 선후배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손상규가 연출에 나선 것은 2022년 양손프로젝트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무대화한 ‘전락’에 이어 두 번째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상규는 “양손프로젝트가 멤버들의 긴밀한 공동창작으로 연극을 만드는 만큼 자연스럽게 연출에도 관심을 가졌다”면서 “지난해 초부터 주변에 연출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얼마 뒤 ‘타인의 삶’과 만나게 됐다”고 돌아봤다.
프로젝트그룹일다는 지난 몇 년간 연극계에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온 더 비트’ ‘그라운디드’ 등 화제의 모노드라마를 선보여 왔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출연했던 손상규의 작품 분석 능력과 함께 ‘전락’에서 보여준 각색과 연출 능력을 보고 이번 작품을 맡겼다.
손상규는 “영화와 연극은 장르의 차이에서 오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시나리오 속 장면들을 무대에서 어떤 틀로 구현할지 고민했다”면서 “실례로 원작 영화에선 음악이 많은 역할을 하지만 연극에서는 그렇게 기능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대사를 새롭게 추가하는 방식 등으로 특정 장면이나 인물의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연극 ‘타인의 삶’의 전개는 원작 영화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영화에서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 그리고 활동을 금지당해 자살하는 연출가 에르스카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감시하는 비즐러와 감시당하는 드라이만이 무대에 함께 존재하는 연출을 통해 비즐러의 심경 변화를 관객이 느끼도록 만들었다. 손상규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비즐러, 드라이만 그리고 크리스타가 모두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극에 반영했다”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인물인 에르스카의 경우 무대화 과정에서 존재감을 보다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손상규는 ‘타인의 삶’ 초연에 연출가로 참여했지만 언젠가 리바이벌 무대에서는 배우로도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극 중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초연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연출과 연기를 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프로덕션이 만들어진 재연부터는 성공을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비즐러의 대학 동기 그루비츠를 재미있게 연기해보고 싶다”고 피력했다.
한편 그는 내년엔 배우로서 매우 바쁜 한 해를 보낼 전망이다. 우선 양손프로젝트가 내년 2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최근작 ‘파랑새’/‘전락’을 선보이는 데 이어 10월 LG아트센터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지난 6월 배우 전도연, 박해수 등과 출연한 사이먼 스톤 연출 연극 ‘벚꽃동산’의 해외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