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내가 도와야지” 쪽방촌 살던 남성의 ‘15만원’ [아살세]

어느 날 갑자기 건강도, 일자리도, 심지어 살 곳마저 잃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 상실감의 크기를 말로 표현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런 불행 속에서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온정을 베푸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지요. 그러나 여기,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꿋꿋이 이겨내며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자 했던 남성이 있습니다. 뇌졸중 수술 후유증으로 삶의 위기를 겪었던 58세 A씨 사연입니다.

A씨의 삶은 지난해 6월 뇌졸중 수술을 받으며 급격하게 달라졌습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건강이 나빠지며 일자리를 잃었고, 매달 내야 하는 월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는 결국 저렴한 월세에 보증금이 없는 서울의 한 쪽방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쪽방촌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조리 시설조차 없는 좁은 방에서는 식사를 챙기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들마저 버겁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인근에 무료급식소가 있어서 다행이었죠. A씨는 서울역 주변의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며 배고픔을 달랬다고 합니다.

급식소 앞의 긴 대기 줄 틈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순간을 A씨는 꽤나 가슴 아프게 기억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위축됐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7월, 이랜드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문을 연 뒤 A씨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 급식소에는 실내 대기 장소가 따로 마련돼 있는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다졌던 A씨는 현재 건강이 회복돼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상태입니다. 지난 10월에는 쪽방촌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했습니다.

그가 쪽방촌, 그리고 무료급식소를 떠나며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줬던 무료급식소의 기부함에 가지고 있던 돈을 쪼개 15만원을 넣은 것인데요. A씨는 쪽방촌에서 생활할 때도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1~2만원씩 기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행을 베풀며 그가 한 말은 “이제는 내가 도와야 할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A씨의 사연은 나눔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나눌지보다 중요한 것은 베푸는 이의 마음가짐이라는 점을요. 그가 나눈 15만원을 숫자 몇개로 재단할 수 있을까요. A씨가 급식소 측에 보낸 문자 속 “잘 먹었다”는 말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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