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건수는 100건을 넘겼다. 집집마다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수북하다. 택배는 우리에게 일상의 편리를 가져다줬지만 과다한 물량에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택배 노동자는 지쳐가고 있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택배공화국’이 된 한국의 물류 속도 이면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고민하려 한다.
세살과 다섯살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 이주연(39‧가명)씨의 하루는 대개 새벽 배송으로 온 물건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들여오는 데서 시작한다. 이씨가 택배에 익숙해진 건 아이가 생긴 뒤 이커머스로 물건을 대부분 사면서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건 매우 번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전엔 며칠 또는 주 단위로 오던 택배들이 이제는 웬만하면 거의 이틀 안에 도착한다.
이씨가 15일간 쓴 택배 수령 일지를 살펴봤다. 10월 30일 주문 건부터 11월 15일 수령 건까지다. 어떤 품목을 주문했고, 주문 일자와 배송 완료 일자는 언제였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을 따져봤다. 이씨는 15일간 17건의 택배를 수령했고, 26개의 물품을 주문했다. 하루 평균 1.8개를 주문했다.
이씨의 택배수령 일지를 보면 대부분의 택배사가 익일 배송을 하고 있었다. 즉 오늘 주문하면 대개 내일은 도착했다. ‘로켓배송’으로 택배시장에 익일배송을 자리 잡게 만든 쿠팡 외 다른 이커머스도 전날 주문하면 다음 날 물건을 배송시켰다. 이씨가 약 2주 동안 수령한 19건의 택배건수 중 3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익일배송이 이뤄졌다. 이씨는 “이번에 일일이 기록을 하다가 놀랐다”며 “쿠팡 말고 다른 택배들도 거의 하루 만에 도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놀라운 배송 속도다.
빠른 택배는 이씨가 이커머스로 주문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 주문한 품목 대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었다. 10월 30일 주문한 육아 지침 도서 ‘마음이 부자인 아이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서점에 가서 직접 읽고 고르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주문한 기모 레깅스도 마찬가지였다.
근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이지 않냐고 물었다. 이씨는 “아이들만 두고 나갈 수 없으니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가서 살 수 있지만, 굳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겠냐”고 했다. 실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 소식에 주문한 기모 레깅스는 주문 하루 만에 도착했다.
이씨가 가장 많은 품목을 주문한 11월 3일. 그는 어린이 전용 섬유유연제와 놀이터에서 쓸 자녀 장난감, 그리고 다싯물 통을 쿠팡에서 한꺼번에 주문했다. 아이들 간식으로 생블루베리, 견과류지리멸치묶음과 본인이 먹을 그릭요거트 등 8건을 컬리에서 구매했다. 이씨는 “아이들 제품을 구매하는 김에 다싯물 통처럼 필요한 물건을 다 산다”며 “어차피 내일 같이 올 거니까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냐”고 말했다. 생각나는 대로 바로 주문하면 하루 만에 도착하는 빠른 택배는 이커머스의 단짝인 셈이다.
하지만 택배는 어마한 쓰레기를 동반할 때가 많았다. 이씨가 지난 4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주문했을 때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스티커 두 장이 A4 용지 크기보다 큰 뽁뽁이 봉지에 포장돼 배송됐다. 유아용 유과도 비슷했다. 유과가 담긴 상자는 해당 제품을 여러 개 넣고도 남을 정도로 공간이 여유로웠다. 이씨는 “박스를 뜯어봤을 때 고작 이만한 제품을 넣으려고 이렇게 큰 박스를 썼나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과대포장만이 아니다. 분명 같은 곳(오픈마켓)에서 같은 시각에 주문했는데 제품이 각각 다른 시간에 배송돼 올 때도 있다. 이씨는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흰색 상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급하게 쿠팡에서 기모 맨투맨 티셔츠 2개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한 개는 오전에, 한 개는 저녁에 오더라. 처음엔 하나만 와서 오배송된 게 아닌지 의심했다”고 말했다. 이는 정해진 구역을 오전과 오후 2차례 도는 쿠팡 만의 2회전 배송 때문으로 추정된다. 쿠팡으로선 배송속도와 전달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소비자나 기사 입장에선 낭비에 가까울 수 상황이다.
이씨는 직접 입어보고 신어봐야 하는 의류와 신발도 온라인으로 곧잘 구매한다. 고가인 15만 원 상당의 캐시미어 니트와 부츠를 주문했다. 이씨는 “요즘 반품 절차가 예전과 다르게 간단해져서 옷이나 신발도 편하게 주문하곤 한다”며 “잘 맞지 않거나 마음에 안 들면 이전에 포장됐던 봉지나 박스에 그대로 넣어 밀봉해서 ‘반품’만 써넣으면 된다”고 했다. 반품이 증가하는 이유다. 반품이 많아지면 그만큼 택배 물량은 많아지고 물류비용도 올라가게 된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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