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육상 강국 케냐의 여성 선수들이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며 주목받고 있지만, 그들의 성과 뒤에는 심각한 경제적 착취와 신체적 폭력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비극으로 끝난 여성 육상 선수들의 삶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케냐 출신이자 우간다 국가대표 여성 마라토너 레베카 쳅테게이(33)는 지난 9월 남자친구의 방화로 사망했다. 쳅테게이는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44위를 기록하고, 2023년 피렌체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로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던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남자친구는 그녀의 금융 정보를 이용해 상금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이에 쳅테게이는 경제적 독립을 요구하며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마체테(정글 칼)로 그녀의 휴대폰을 부수며 위협했다. 두 사람은 우간다 국경 바로 건너편 케냐 지역에 구입한 땅을 두고도 갈등을 빚었고, 방화가 발생한 날 쳅테게이는 두 딸과 함께 교회에서 돌아오다 불의의 공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케냐 여성 육상 선수들이 겪는 폭력과 착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쳅테게이의 아버지 조셉은 “경찰에 여러 번 신고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며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가족들은 거실 벽에 ‘여성 살해 희생자를 위한 투쟁’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에는 케냐에서 살해된 네 명의 여성 육상 선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희생자는 케냐 장거리 육상 대표이자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아그네스 제벳 티롭(25)으로, 2021년 자택에서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이후 단거리 대표 에디스 무토니(27)와 케냐 출신 바레인 국가대표 다마리스 무테 무투아(28) 각각 남편과 남자친구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었으며, 가해자들은 이들의 수입을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독수리’라 불리는 착취 구조
케냐에서는 여성 선수들을 착취하는 남성들을 ‘독수리’라 부른다. 이들은 가난한 여성 선수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며 신뢰를 얻은 뒤, 수입을 착취하거나 삶을 통제한다.
2012년 보스턴마라톤대회 남자부 우승자인 웨슬리 코리르는 이를 “현대판 노예제도”라며 “그들은 여성을 투자 상품으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또한, 200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금메달리스트 자네스 젭코스게이는 “여성 선수 대부분이 생리대조차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며 이들이 각종 폭력과 착취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티롭의 오빠 마틴은 “많은 여성 선수들이 자신들이 번 돈을 직접 관리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남편이나 파트너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코치들은 마사지를 빌미로 성적 행위를 강요하거나, 여성 선수들에게 도핑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성년 선수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여성 선수 보호를 위한 노력
여성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 ‘티롭의 천사들’은 피해 여성들에게 상담과 법적 지원을 제공하고,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케냐 육상 연맹은 성폭력 예방 정책을 도입하고 여성 보호 시스템을 강화했다. 남성 코치와 미성년 여성 선수 간 신체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쳅테게이의 가족은 그녀의 딸 조이(12)와 채리티(9)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12세 조이는 이미 유망한 육상 선수로 주목받고 있으며, 가족은 그녀가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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