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에서 바라본 군중의 모습은 어땠을까

Է:2024-11-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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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거 쾨더, 성서의 그림들/게르트루트 비드만 엮음/유명철 이호훈 옮김/사자와어린양

독일 사제 화가 지거 쾨더가 그린 작품 ‘죄인들과 함께하는 식사’. 그림 하단에 예수 그리스도의 손바닥이 보인다. 사자와어린양 제공

빵과 포도주가 차려진 간소한 식탁에 일군(一群)의 사람이 둘러앉았다. 하나같이 맞은편에 앉은 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이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전쟁에 참전했다 팔을 다친 아프리카인 곁에는 베일을 쓴 귀부인이 앉았다. 그 옆에는 안경 쓴 젊은 지식인과 분장한 어릿광대, 구걸로 생계를 잇는 눈먼 노파와 매춘부, 탈릿(기도 숄)을 걸친 유대교 랍비가 각각 자리했다.

현실에선 함께 둘러앉을 일이 거의 없을 듯한 이들의 공통점은 얼굴에 광채가 돈다는 것이다. 이들과 마주 보는 집주인이 뿜어낸 빛이 반사돼 생긴 광채다. 한 손엔 빵을 쥔 채 이들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손바닥엔 못 자국이 선명하다. 이들이 마주 보던 집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인 셈이다.

독일 사제 화가 지거 쾨더가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란 내용의 마태복음 25장 35절 말씀을 그린 작품. 도움을 받는 이들의 얼굴이 예수처럼 묘사돼 있다. 사자와어린양 제공

현대 종교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독일의 사제 화가 지거 쾨더(1925~2015)의 1973년 작 ‘죄인들과 함께하는 식사’ 속 풍경이다. 슈투트가르트 예술학교에서 미술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미술 교사로 일했던 쾨더는 40세쯤 진로를 바꿔 197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유화와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복음과 함께 현대인의 고독과 좌절, 탐욕과 야망 등을 조명했다.

“말은 어눌하게 해도 그림은 그릴 수 있는 작은 선지자”라고 늘 자신을 소개해온 쾨더의 작품은 색이 강렬하고 다층적 의미가 담긴 표현이 적잖다. 다만 해석을 오롯이 관람자의 몫으로 여겨 따로 해설집을 내진 않았다. 책은 생전 그와 함께했던 친구 27명이 쾨더의 작품에 해설과 묵상 글을 붙인 것이다. 가톨릭 사제와 신학자, 심리학자와 교육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친구의 삶을 바탕으로 103편의 작품에 묘사된 성경 본문과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생생히 복원해냈다.

왼쪽 그림은 성경 인물 욥을 그린 것이다. 고통에 울부짖는 욥의 곁에 그의 죄를 따져 묻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인다. 오른쪽은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여인'으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요 4:26)을 묘사했다. 사자와어린양 제공

가장 눈에 띄는 건 작중 인물에게 자주 나타나는 특유의 시선 처리다. 그의 그림엔 하나님과 예수, 성령의 모습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하늘을 바라보는 인물의 얼굴 속 광채로 절대자의 현존을 가늠할 따름이다. 마므레 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마주한 아브라함(창 18:2)과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창 32:8), 자신의 불행을 하나님께 따져 물은 욥(욥 33:5)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요 4:26)처럼 물에 반사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도 여럿이다.

지거 쾨더의 작품 '최후를 맞으시기 직전 예수의 시선이 머문 곳'.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의 시선으로 그렸다. 사자와어린양 제공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 속 상황을 세밀히 묘사한 그림도 눈에 띈다. 누가복음 23장 33절을 그린 ‘최후를 맞으시기 직전 예수의 시선이 머문 곳’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관점으로 로마 병사와 대중을 바라본 작품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검은 태양이 정면에 자리했고 그 주위엔 여러 표정의 얼굴을 그렸다.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묘미다. ‘장미’와 ‘비둘기’는 희망을, ‘어릿광대’나 ‘익살꾼’은 세상 속 구경거리로 치부된 사도와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독일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등이 담긴 그림으로 교회사의 한 장면도 재현한다. 교파와 상관없이 현대인의 눈으로 성경 이야기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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