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5)씨는 최근 알뜰폰을 해지하려다가 휴대전화만 1시간 넘게 붙들고 있었다. 이 업체는 요금제 신청과 유심 구매 등 가입 절차 일체를 온라인으로 진행하지만, 해지 신청은 유선상으로만 받고 있다. 최씨는 며칠 내내 고객센터 연결에 매달린 끝에야 겨우 해지에 성공했다.
최씨가 겪은 사례는 대표적인 ‘다크패턴’이다. 이는 교묘한 눈속임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소비자의 비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크지만, 온라인상거래 업계에서는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한층 강화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이런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크패턴은 계약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설정하거나, 해지 상담을 명목으로 계약 유지를 설득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한다. 한 신용카드사의 경우 카드 발급 신청은 온라인으로 받지만, 해지는 반드시 상담원과의 유선 통화를 거친 뒤 가능하도록 한다. IPTV 사업자가 해지를 요구하기 위해 전화를 건 고객에게 사은품을 언급하며 계약 유지를 유도하는 ‘해지 방어’는 업계에서 공공연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 중 일부는 현행법상 위법 소지가 크다. 전자상거래법 제5조를 보면 ‘계약의 청약을 전자문서로 할 수 있게 하는 경우 청약 철회 역시 전자문서를 통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가입은 온라인으로 받으면서 해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불법행위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업이 소비자 보호, 개인정보 확인 등 사유를 들며 계약해지 방식을 까다롭게 설정할 경우 위법 여부를 단정하기 쉽지 않다. 한 예로 신용카드사는 “잔여 포인트나 결제대금이 남아있을 수 있어 상담원을 통한 확인을 거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해지 신청은 온라인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유선 상담을 거친 뒤에야 최종 확정되도록 하는 경우에도 법적 판단이 더 까다로워진다.
이런 허점을 노린 ‘다크패턴 마케팅’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인력 한계상 모든 업체의 다크패턴을 잡아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 영업하는 업체들 규모가 대부분 영세하다는 점도 정부가 공격적인 규제에 나서기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업계의 이목은 내년 2월 시행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쏠리고 있다. 개정안은 소비자 피해가 큰 6개 주요 다크패턴을 명시하고, 사업자가 관련 의무를 어길 경우 실질적인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시정조치와 과태료부터 영업정지까지도 가능해진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크패턴에는 당연한 권리에 대한 허들을 만들어 소비자를 지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윤을 내는 기만적 측면이 있다”며 “이런 행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교묘해지는 특성이 있기에 정부가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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