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밤 신호대기 중에 수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성을 목격한 버스 기사가 차량에서 뛰어내려 휠체어를 밀어준 사연이 전해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 내리는 밤에 번잡한 왕복 10차로 횡단보도를 수동휠체어에 탄 한 남성이 보호자도 우산도 없이 혼자 건너고 있었다. 남성이 절반도 채 건너지 못했는데 신호등 파란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던 한 버스 기사가 곧장 버스에서 내려 남성에게 달려갔다. 기사는 빠른 속도로 휠체어를 밀어 남성을 인도까지 데려다준 뒤 후다닥 다시 돌아와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남짓이었다.
버스 기사의 이 같은 선행은 SNS 글을 통해 퍼졌다. ‘어린이, 세 번째 사람’ 등을 쓴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씨가 마침 이 장면을 목격하고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이다.
김씨는 “폭우 속 휠체어를 탄 분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반도 못 건넌 상황에서 점멸이 시작됐다”며 “(이때) 정차 중이던 버스 기사님이 (버스에서) 튀어나와 휠체어를 안전지대까지 밀어드리더니 흠뻑 젖은 채 버스로 복귀하셨다. 번개맨 같았다”고 적었다. 이어 “470번 1371호 감사하다”며 휠체어와 하트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김씨의 글은 조회수 약 50만회를 기록하고 6500회 이상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8000개에 가까운 ‘좋아요’를 얻기도 했다.
서울 간선버스 470번을 운영하는 다모아자동차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게시판에도 이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한 시민은 “빗줄기로 시야가 안 좋았고 (길을 건너던 분은) 수동 휠체어 작동도 어려워 보였다”며 “그때 정차 중이던 470번 버스 기사님이 버스 앞문을 열고 달려 나가시더니 거센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도움을 주셨다. 순간 벌어진 따뜻한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버스를 몬 선행의 주인공은 버스 운전 10년 경력의 이중호 기사였다. 해당 버스 블랙박스 영상에는 이씨가 거의 반사적으로 도로로 뛰어나가 휠체어 탄 남성을 도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씨는 26일 연합뉴스에 “비 내리는 밤 휠체어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분이 보호자도 우산도 없이 언덕 지형을 힘겹게 지나가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한 빗줄기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신호가 바뀌면 반대편 차로에서 바로 출발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어 곧장 뛰어나갔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에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뿐이었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손님들이 사고 없이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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