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업체 A는 결혼을 앞둔 병원장 부부의 고급 예식장 예식비, 호화 신혼 여행비, 명품 예물비 등 결혼비용 수천만원을 대납했다. 해당 병원 소속 의사의 서울 최고급 호텔 숙박비용 수백만원을 대신 내기도 했다. 모두 자사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공된 리베이트였다.
또 다른 의약품 업체 B는 의사의 자택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소파 등 고급가구와 대형가전을 배송했다. 병원 소재지로 1000만원 상당의 냉장고와 PC 등 가전을 보내기도 했다. C사는 병원장의 배우자, 자녀 등을 자사 주주로 등재한 후 수십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약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병원장에 제공한 행위도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처럼 리베이트를 제공해 자사 의약품을 처방하도록 유도한 의약품 업체 16곳을 세무조사에서 적발했다고 25일 밝혔다. 리베이트는 판매한 상품·용역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행위로 일종의 뇌물이다. 건설업체 17곳, 보험중개 업체 14곳 등 총 47개 업체의 리베이트 행위가 이번 세무조사에서 적발됐다.
의약품 업체는 의료인의 사적 비용을 대납하거나 물품·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의약품 업체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판매·영업 인력 등을 대신하는 영업대행사(CSO)를 통해 우회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업체들도 적발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조사 과정에서 의약품 업체 영업 담당자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밝히기보다 대신 세금을 부담하겠다고 주장했다. 의약품 업체와 의료인의 관계에서 의료인이 ‘슈퍼 갑’에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과거 세무조사에서는 제공 업체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리베이트를 실제 받은 일부 의료인을 특정해 소득세를 과세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에서는 시행사, 재건축조합 등이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 허위로 가공 급여를 지급하거나 발주처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방식의 리베이트가 적발됐다. 특히 도급계약이 연쇄적으로 체결되는 특징으로 인해 대형 건설사가 발주처에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하도급업체로부터는 리베이트를 받아 챙기는 이중적 모습도 드러났다.
경영인 정기보험(CEO보험)에 가입한 법인의 사주일가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도 포착됐다. CEO보험은 법인비용으로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으로 CEO 또는 경영진의 사망이나 심각한 사고 발생 시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이번에 적발된 보험중개법인은 고액의 법인보험을 판매하면서 CEO와 그 배우자, 자녀 등을 보험설계사로 허위 등록해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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