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국에 붙이며 25년간 딸을 찾았던 고(故) 송길용(71)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딸을 찾기 위한 현수막을 제작했던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의 나주봉 회장은 지난달 31일 YTN24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송씨가 최근 급성심근경색증 시술을 받고 퇴원한 뒤 지난달 26일 트럭을 가지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운명했다”며 “(송씨는) 딸 찾는 데 그야말로 평생을 바친 딸바보, 최고의 아빠”라고 말했다.
송씨는 애타게 찾던 딸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지난달 26일 사망했다. 송씨의 딸 송혜희(당시 17세)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9년 2월 13일 경기도 평택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행방불명됐다. 이후 송씨는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국 곳곳에 붙이고 다니며 딸을 애타게 찾았다.
딸 실종 이후 송씨 가족은 생활고를 겪어 왔다고 한다. 나 회장은 “송씨와 부인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누볐다”며 “부인이 먼저 작고하시고 혼자 남게 된 송씨가 실종된 딸을 찾으려고 현수막과 전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폐지와 폐품을 수거했다”고 전했다.

나 회장은 사망 전날 송씨와 전화통화도 했었다고 한다. 그는 “(송씨가) 사망하시기 하루 전에 전화가 와서 ‘현수막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걱정하는 말을 하시고 나서 연락이 없었다”며 “이후 현수막 제작업체 사장님을 통해 (송씨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사망 직전까지도 송씨는 딸을 찾는 데에만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 회장은 “송씨는 현수막·전단지 배포를 하며 딸을 찾으러 다녔다”면서 “트럭에 크게 사진을 붙여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심지어 무인도까지 샅샅이 뒤졌다. 평소 즐기던 술·담배도 모두 끊고 ‘(나는) 혜희를 못 찾으면 못 죽는다’고 하셨다”며 애통해했다.
송씨는 나 회장에게 ‘내가 먼저 죽으면 우리 혜희를 꼭 찾아 달라’는 부탁도 남겼다고 한다. 나 회장은 “2~3주에 한 번 만나 식사하거나 차를 마셨는데 농담 비슷하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남기는 유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생전 송씨는 1t 트럭에 현수막과 전단을 싣고 100만㎞가량을 주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딸을 찾는 데 전 재산을 쓴 송씨는 기초수급자가 돼서도 정부 지원금 60만원 중 40만원을 현수막·전단 제작에 썼다고 한다. 송씨가 ‘딸 송혜희를 찾아달라’며 전국에 뿌린 전단은 1000만장, 현수막은 1만장가량 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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