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식당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증한 ‘착한가격업소’다. 칼국수를 주변 식당보다 저렴한 7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배달앱에는 A식당과 같은 사업자등록번호로 닭요리 전문점 B식당, 돼지고기 전문점 C식당 두 곳이 별도 등록돼 있다. 이들 두 식당은 A식당 업주가 칼국수 외에 다른 메뉴를 팔기 위해 만든 배달 전문점이다. A식당은 오프라인에도 존재하지만, B·C식당은 온라인에만 존재한다.
B·C식당은 일종의 배달앱 ‘유령업소’인데도 A식당과 사업자번호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착한가격업소가 받는 일부 혜택을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는 저렴한 가격은 물론 청결한 시설 등을 고려해 착한가격업소를 선정, 여러 혜택을 준다. 지난달 전국적으로 도입된 배달 요금 지원 서비스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소비자는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앱을 통해 착한가격업소 음식을 주문할 경우, 배달 요금 2000원 할인 쿠폰을 지원받는다.
B·C 식당은 배달앱에서 착한가격업소로 분류돼 요금 지원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B식당의 대표 메뉴는 1만8000원으로 해당 메뉴 지역 평균가인 1만6000원 보다 비싸다. C식당의 메뉴 가격대도 주변 식당과 비교해 저렴한 편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안정 모범업소’에 가야할 혜택을 엉뚱한 곳에서 받아간 셈이다. A식당 대표는 “잘못된 것은 알았는데 그냥 내버려 뒀다”고 말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착한가격업소 D식당 업주는 해당 식당 메뉴와는 전혀 다른, 샌드위치를 파는 분식점을 같은 사업자번호로 배달앱에 등록해 쿠폰 혜택을 챙겼다. 착한가격업소 E식당도 전혀 다른 메뉴를 내세운 F식당을 같은 사업자번호로 등록해 지원을 받았다. F식당 1인분 가격은 착한가격업소 평균 대비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취지와는 정반대로 정책이 운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식당을 지원해 물가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였다. 이 사업에는 국비 30억원, 지방비 70억원 등 모두 합쳐 1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행안부는 국민일보 취재로 서비스 부정 수급 정황을 파악해 최근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우선 점유율 1위인 배달의민족에 입점한 착한가격업소 660여 곳이 대상이다. 행안부는 착한가격업소의 사업자번호가 제도 취지와 다르게 도용된 사례가 발견되는 경우 즉각 해당 업소에 대한 지원을 취소할 방침이다. 업주가 제도적 허점을 악용했을 가능성도 살피기로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25일 “영세 상인들의 사업을 확장시켜주자는 취지에서 정책을 시작한 것인데 이런 상황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며 “전수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관리·감독 부실로 혈세가 낭비돼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령업소가 성행하는 배달앱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배달의민족 측은 “행안부와 협의해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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