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재판소(국내 대법원격)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가정연합)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고액헌금은 개인의 자유의사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부 종교단체의 고액헌금은 위법성이 있어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정연합을 둘러싼 비슷한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15일 교도통신과 NHK 등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은 지난 11일 가정연합 여성 신자 A씨의 딸이 교단 측에 약 6500만엔(5억 63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종교단체 헌금과 관련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첫 판결 사례다.
대법원은 “A씨는 치매 진단을 받아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상태였다”며 “가정연합 측이 각서 제출을 주도했고, 판단이 어려운 어머니의 상태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큰 불이익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는 헌법이 보장한 재판 받을 권리를 제약하기에 유효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에 반하는 경우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번 재판은 일본 가정연합에 ‘고액 헌금의 반환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작성한 각서로부터 시작됐다.
A씨는 2005~2010년 남편 명의의 금융 자산을 해약하거나 토지를 매각했고 이 과정에서 가정연합에 1억엔(약 8억6500만원) 이상을 헌금했다. 가정연합은 2015년 11월 A씨로부터 ‘헌금 반환 포기 각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종교단체 간부 앞에서 “헌금은 내 자유의사로 했다”는 동영상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7개월 뒤 A씨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A씨의 딸은 2017년부터 소송을 이어왔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A씨가 작성한 ‘교단 측에 돈을 돌려달라고 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각서는 유효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21년 사망했으며 그의 딸은 최고재판소에 상고했다.
가정연합 측은 이에 “사실을 기반으로 내려진 1심과 2심 판결이 번복돼 유감”이라며 “앞으로도 주장의 정확함을 계속 주장할 것”이라고 배상책임 부인 의사를 밝혔다.
가정연합에 전문가들은 이번 최고재판소 판결이 가정연합을 둘러싼 비슷한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영선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다행”이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통일교 신자들이 회심하고 올바른 믿음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교 신자들의 회심뿐만 아니라 해산명령 관련 건에 대해서도 일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가정연합에 대한 해산명령을 법원에 청구하기도 했다. 해산명령 최종 결정 시 일본 가정연합은 종교법인으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한편 가정연합은 한국 주요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합동·고신 등에서 ‘전통적인 신학 사상과는 극단적으로 다름’ ‘반기독교적’ 등의 사유로 사이비 및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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