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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화마에 신음하는 보르네오, ‘엄마의 힘’으로 지킨다

보르네오섬 자치소방대 ’파워 오브 마마‘
대원 92명 전부 여성…대부분 주부
화재로부터 아이·숲·야생동물 보호

화재 진압 훈련을 받고 있는 '파워 오브 마마' 대원들. 국제동물구조(International Animal Rescue) 제공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열대우림이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보르네오’는 최근 잦은 화마로 신음하고 있다.

연구진들은 인도네시아 농부들의 화전(花煎)을 반복되는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나뭇잎 등 식물 잔해가 퇴적돼 생긴 탄소를 가득 머금고 있는 이탄(泥炭) 습지림에 팜유 생산을 위한 개간 목적으로 지른 불이 퍼져나가 큰 화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르네오섬에 영토를 걸치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령에서 넘어오는 연무 탓에 하늘이 새빨갛게 물드는 등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고 있다며 연일 항의하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 기상 현상과 인도네시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양국이 끝없는 책임 공방을 벌이는 동안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되고 있다. 보르네오섬에만 사는 세계적 멸종위기종 ‘보르네오 오랑우탄’의 개체 수는 1999년 20만∼30만마리에서 2015년 7만∼10만마리로 불과 10여년만에 절반 이상 급감했다.

다량의 탄소가 저장된 이탄지에 불이 나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이는 지구온난화를 부채질 한다. 보르네오섬의 대형 화재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위협하는 재난인 셈이다.

열대우림의 산불은 무엇보다도 이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험이 된다. 보르네오섬 서부 칼리만탄의 케타팡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시티 누리아니는 “우리는 매년 대형 화재를 경험한다. 연기가 너무 심해 학교가 문을 닫고, 아이들은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아니는 아이들과 숲, 야생동물을 잦은 화재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2022년 시민 소방대 ‘파워 오브 마마(The Power of Mama)’에 가입했다고 지난 16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원 전원이 여성인 이 소방대는 창단 초기 44명 규모로 출발해 현재는 모두 92명의 대원이 6개 마을에서 활동 중이다. 연령대는 19세부터 60세까지 다양하다. 대원 대부분이 주부지만 최근에는 젊은 직장인 여성들도 합류하는 추세다.

파워 오브 마마는 인도네시아 오랑우탄 보호단체 ‘YIARI’의 산하 조직이다. YIARI의 디렉터 카르멜레 라노 산체스는 한 농지에서 잡초를 정리하려고 지핀 불이 퍼져나가자 이를 꺼달라고 요청했는데, 해당 농부와 지역 당국이 모두 무시하는 사이 농부의 부인이 직접 나서 불을 끄는 모습을 목격하고 여성 자치소방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방대에 합류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화재 진압과 드론 조종 등 각종 교육 및 훈련을 진행한다.

파워 오브 마마는 또한 인도네시아 당국과 협력해 지역 농부들이 화전에 의존하는 대신 유기질 비료로 작물을 키우도록 장려하고 있다. 소방대의 최고령 대원인 60세 쥬리아는 “고대 선조들이 했던 방식대로 땅을 관리해 토양을 산성화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르네오섬 자치 소방대 ’파워 오브 마마‘ 대원들. 국제동물구조(International Animal Rescue) 제공

화재 위험이 높은 건기가 되면 소방대원들은 매일 아침 가사를 마치고 오전 9시부터 농가와 열대우림을 순찰한다. 화재현장을 초기에 발견하고 이를 소방호스 등을 이용해 초기 진압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오후 3시쯤 주부들이 살림에 복귀하기 전까지 순찰은 이어진다. 반대로 우기에는 마을 곳곳이 침수돼 이동에 제약이 생기는 등 여러 불편함이 따르는데, 이때 파워 오브 마마는 나무로 만든 카누를 타고 침수 지역 주변을 살핀다.

사고 현장에는 화재 속에 고립되거나 연기에 노출될 가능성 등 각종 위협이 있는 만큼, 대원들은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화재 지역과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진압하도록 철저한 안전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창설 2년차를 맞은 지금까지 사망자 없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여성 인권 및 환경 운동가인 렐리 카이르누르는 파워 오브 마마의 여성들에 대해 “농촌에서 지역사회 차원의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대원들은 활동 초기 마을 남자들로부터 “여자가 왜 순찰을 하느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으냐”는 조롱을 수없이 당했다고 전했다.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가장해 농작물을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농부도 있었다. 주리아는 “내가 파인애플을 훔쳤다고 거짓말했던 농부는 자기 구역에 불이 나자 파워 오브 마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양수기를 가지고 온 우리를 보고 매우 부끄러워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한때 비웃음을 샀던 파워 오브 마마는 이제 어느 마을을 가도 환영받는 존재가 됐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역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네시아의 ‘클린 에어 챔피언십 어워드 2023’을 수상했다.

YIARI 디렉터 산체스는 “화재 진압만큼이나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을 모두가 깨닫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양우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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