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숨차봤어요”… 휠체어 타고 함께 땀 흘리는 이들

국내 최초 무장애 헬스케어센터 ‘어댑핏’ 가보니

8kg 바이퍼를 들어올렸다 내리며 어깨 운동중인 (왼쪽부터) 이성준(47)씨와 김보현(38)씨

쥬니미리/ 수 8시 / 2명 모집 중 / CP(뇌성마비)
우리들의 세상 / 월,수,금 / 2명 모집 중 / 지적장애


서울 마곡동 한 헬스장 입구에 놓인 화이트보드에는 여럿이 함께 운동하는 소모임 ‘GX(Group Exercise)’ 회원 모집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여느 헬스장과 마찬가지로 ‘움파룸파’, ‘쥬미니리’ 등 개성 있는 소모임 이름과 시간, 모집 인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이러한 내용과 함께 ‘편마비’ ‘지적장애’ ‘뇌성마비’ ‘골형성부전증’ 같은 여러 장애 유형이 함께 기록돼있다는 점이었다.

14일 찾은 이곳은 배리어프리 헬스케어센터 ‘어댑핏’ 서울지점이다. 2020년 부산에 설립된 어댑핏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공간에서 운동할 수 있는 국내 최초 무장애 헬스케어 센터를 표방한다. 운동기구 자체는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것과 별 차이는 없지만, 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 장치를 달거나 높낮이 등을 보다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어댑핏 헬스 스튜디오 입구쪽에 마련된 칠판. 운동하는 소모임 ‘GX(Group Exercise)’ 회원 모집글이 적혀있다.

생전 처음 숨차봤어요

'썬데이 크루' 팀원들이 운동 시작 전 휠체어로 센터를 돌며 몸을 풀고 있다.

“10바퀴 먼저 돌고 시작할게요!”

트레이너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휠체어 4대가 일사불란하게 왕복거리 50m 정도되는 헬스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올라가면서 휠체어 바퀴가 바닥과 부딪치는 마찰음이 헬스장에 울려퍼졌다. 이들은 지체장애인 5명이 모인 ‘썬데이 크루’ 팀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모여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됐다.

휠체어로 10바퀴를 왕복하는 몸풀기가 끝난 후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이날은 어깨와 코어 부위 운동에 집중했다. 어깨운동을 위해 8kg의 소도구 ‘바이퍼’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두 명이 어깨운동을 하는 동안, 나머지 세 명은 봉을 이용해 흉추와 척추를 움직이는 ‘코일링 코어’ 운동을 했다. 10회씩 4세트가 끝난 회원들의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2분간 휴식.” 트레이너 말에 팀원들은 부들거리던 팔에 힘을 빼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번엔 거친 숨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숨을 고른 이성준(47)씨는 “운동을 시작하며 생전 처음 ‘숨 차는 경험’을 해봤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 숨 차는 경험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겐 드문 경험이다. 낯선 경험에 몸이 익숙해진 건 1년간 운동 소모임을 꾸준히 한 결과다. 이연화(42)씨도 “이전엔 숨찰 일은 집안일뿐이었지, 운동으로 숨이 차본 적은 없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팔꿈치 뒤로 원을 그려요. 회전 더 회전. 맞아요”, “가슴을 들면서 등을 조여보세요. 마지막 하나만 더!”, “발 땅에 잘 디디고~ 자 지금부터 유지!”

트레이너 목소리가 커질수록 회원들의 숨도 가쁘게 차올랐다. 수업 종료 10분 전, 트레이너가 굵은 밧줄을 꺼내왔다. 30초 동안 있는 힘껏 밧줄을 흔드는 전신운동 ‘배틀로프’가 이날 마지막 순서다. 밧줄을 흔드는 사람의 휠체어와 몸통이 흔들리지 않도록 회원들은 번갈아 가며 서로 잡아줬다.

운동이 끝난 후 팀원들은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날 팀 막내인 이준휘(12)군이 영재학급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하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40대 ‘삼촌’들은 “준휘가 형이랑 놀아줄 급이 아니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8kg 바이퍼를 들어올렸다 내리며 어깨 운동중인 (왼쪽부터) 이성준(47)씨와 김보현(38)씨

‘따로’보다는 ‘함께’

이들에게 ‘숨찰 일’이 많으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묻자 ‘통합 체육시설’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성준(47)씨는 “배리어프리로 보편적 접근성을 높여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운동을 하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전용’이 붙은 생활 체육 시설이 장기적으로 운영되기 힘든 이유를 들려줬다. 김보현(38)씨는 “복지의 관점에서 ‘장애인 전용 체육관’ 등을 새로 짓는 건 안 좋은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이어 “장애인만을 위한다는 명분이 현실에선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와 충돌하기 쉽다”며 “정권이 바뀌고 예산이 떨어지면 시설 보수도 안 된 채 흉물처럼 방치되기 십상이다”라고 했다.

이들은 또 모여서 하는 운동의 의미는 장애인들에게 더 각별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재혁(47)씨는 “공간보다 중요한 건 커뮤니티”라며 “같이 운동하면 가기 싫더라도 몸을 일으켜 가게 되고, 동기부여도 된다”고 말했다. 이연화씨도 “혼자 운동하면 재미없고 심심했는데 함께 하니 동호회처럼 또 하나의 취미가 됐다”고 거들었다. 막내 준휘군도 1:1 PT(개인 트레이닝) 수업을 받다 삼촌들과 같이 운동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낸 후 팀에 합류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체육시설 이용률은 15.3%에 그친다. 장애인들은 체육시설 이용률이 낮은 이유로 ‘혼자 운동하기 어려워서’(29.9%)를 가장 많이 꼽았다.

허씨는 “커뮤니티가 1년 이상 지속되는 게 중요한데, 공공 생활 체육시설 프로그램은 보통 6개월 단위인 데다가 그마저도 선착순 신청에 실패하면 기회를 놓치기 쉬워 커뮤니티 형성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입장에서 강도 높은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보다 ‘제대로 된 운동’에 더 갈증을 느껴왔다는 의견도 있었다. 운동 이후 혈관 나이가 어려지는 등 건강 지표가 확연히 개선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허씨는 “여길 다녀보니 운동이 곧 재활이고 치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만족해 했다.

배틀로프 운동중인 (왼쪽부터) 김보현(38)씨와 이성준(47)씨. 이준휘(12)군와 허재혁(47)씨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여전한 ‘현실의 문턱’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이들은 지하철이나 택시, 혹은 자차로 서울과 경기도에서 출발해 마곡으로 모인다. 장애인 콜택시 배차 소요시간을 묻자 김보현씨는 “대중이 없다”며 “오늘은 배차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을 꺼내자 각자 콜택시 배차로 진땀을 뺐던 일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씨는 “지난 주엔 장애인 콜택시가 너무 안 잡혀 급하게 지하철을 탔는데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도착해서 20분 운동하고 갔다”고 아쉬워했다. 이연화씨는 “오후 5시 수업 오려고 1시간 동안 배차를 기다렸는데 밤 11시엔 잡힐 것 같으니 취소하라는 연락이 온 적도 있다”며 “그래도 와야겠다는 마음에 일반 택시를 타고 왔다”고 털어놨다.

이곳처럼 장애인이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기자가 어댑핏이 위치한 마곡동에 위치한 인근 헬스장 10곳에 휠체어를 탄 채로 이용이 가능한지 문의했더니 두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확답이 돌아왔다. 거절한 곳 중 한 곳은 “사람이 붐비지 않는 오전에만 가능하다”고 조건을 붙였다. 나머지 일곱 곳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이용이 불가능하다”, “오는 건 자유지만 운동 기구 사이가 비좁아 아마 불편할거다”, “장애인 혼자 운동하면 다칠 위험이 크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거절 의사를 완곡하게 전달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5조는 ‘체육활동을 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 체육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시설의 관리자는 체육활동의 참여를 원하는 장애인을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위의 경우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이연화씨는 장애인은 수동적일 것이란 편견부터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장애인 표지판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표지판에 장애인이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겼다. 우리 딸이 그 표지판을 보면서 ‘엄마는 혼자서도 잘만 다니는데 왜 꼭 뒤에서 누가 밀어줘야만 할 것 같은 그림일까?’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다 뉴욕에서 장애인이 휠체어를 굴려서 전진하는 표지판이 최초로 등장했다”며 “그렇게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조금씩 장애인의 독립성과 능동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정현경(25) 트레이너는 “센터를 찾아와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요?’라고 문의하는 장애인이 많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뭔지 몰라 운동 목표 자체를 세우기 어려워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 운동 효과는 ‘변화’다. “운동 시작하고 표정부터 밝게 바뀌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뇌성마비 회원님 중에 하체 운동을 한 뒤부터 까치발을 들어 방 불 스위치에 손이 닿는다며 좋아하셨던 분이 계신데, 운동의 효용이 거창한게 아니에요. 일상 생활의 작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서부터 느낄 수 있어요.”

2014년 7월 25일 뉴욕시는 46년 동안 사용하던 수동적인 모습의 장애인 마크 대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의 장애인 마크로 장애인 표시를 변경했다.

글·사진=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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