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송암교회에서 함석헌기념관까지, 역사의 흔적을 밟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서울 강북 지역 기독교·근대 유적 답사
체감기온 30℃ 육박한 13일, 역사의 숨결 따라 걸은 2만보

입력 : 2024-04-13 18:58/수정 : 2024-04-14 08:51
서울 강북 기독교 유적 답사에 참여한 이들이 13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옆에 있는 차미리사길 간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28℃에 육박했던 13일 우이신설선 화계역 2번 출구에 20여 명 가까운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연구소·이사장 이덕주)가 주최한 서울 강북·도봉 기독교 및 근대유적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온 답사단원들이었다.

연구소가 준비한 49번째 답사는 송암교회에서 출발해 함석헌기념관까지 6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답사단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연신 땀을 닦으며 2만보 가까이 걷고 또 걸었다. 이들은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문익환 통일의집, 덕성여자대학교, 김수영문학관, 전태일 집터, 창동역사문화공원 등을 차례대로 찾았다.

답사단은 교회사 박사인 홍승표 아펜젤러인우교회 목사가 인솔했다. 홍 목사는 각 장소의 역사적 사실과 한국교회사 속에서의 의미 등을 설명하며 흥미를 돋웠다.

첫 방문지는 1962년 6월 한신대 캠퍼스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창립한 송암교회(김정곤 목사)였다.

실제 교회는 한신대와 350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가깝다.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인 이 교회는 한신대의 기틀을 닦은 송암 함태영(1873~1964) 목사와의 인연도 깊다. 교회가 있던 자리에 함태영기념관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의 호인 ‘송암’이 교회 이름 됐다.

법관을 지낸 함 목사는 1919년 3·1 만세운동에도 깊이 관여한 민족 지도자였다. 1922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목사안수를 받은 함 목사는 1951년에는 한신대 학장을 지냈고 이듬해 부통령이 됐다.

한신대의 전신인 조선신학교 동자동 캠퍼스 정문 기둥 모습. 대학은 수유리로 대학을 이전하면서 이 기둥을 옮겨 왔다. 아래 석판에는 조선신학교를 세운 송창근 목사의 유언이 적혀있다.

홍 목사는 “한신대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할 때 결정적인 기여한 분이 바로 함태영 목사로 송암교회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대단한 지식인이었던 함 목사가 골육종으로 투병할 때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를 받은 뒤 병이 나았고 결국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신유 체험이 그를 교회 지도자로 세운 계기였다”고 소개했다.

답사단은 한신대를 들른 뒤 이곳에서 900m 떨어진 문익환통일의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집은 1966년 준공한 뒤 문익환 목사가 별세할 때까지 28년 동안 살던 집이다. 2018년 6월 '문익환통일의집'으로 개관했고 현재 서울미래유산 중 하나다. 이 집은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밑그림을 그린 역사적인 장소로 문 목사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품이 전시돼 있다.

답사단원들이 13일 서울 강북구 문익환통일의집 뒤뜰에서 문익환 목사의 얼굴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원주에서 온 류계순(70) 삼천감리교회 권사는 “오래전부터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전국 기독교 역사 순례를 하며 교회사의 중요성을 깨달아 왔다”면서 “연구소의 기독교 문화유산해설사 아카데미 1기 출신인데 오늘 답사를 통해 또 새로운 교회사의 현장을 알게 돼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류 권사는 “이 코스를 지인들과 함께 오고 싶다”면서 “지금의 교회가 어떤 여정을 거쳐 왔는지를 아는 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답사는 역사적인 장소를 돌아본 뒤 다음 장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일정 중 두 차례 버스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홍 목사는 강북·도봉 지역의 기독교적 가치에 관해 설명했다.

홍 목사는 “오늘 답사한 강북과 도봉구 일대 기독교 유적지는 유독 신앙적 지조를 지키고 사셨던 신앙 선배들의 흔적이 많은 곳”이라면서 “답사 코스를 만들고 함께 걷는 건 자칫 지나치고 잊히기 쉬운 역사적 현장과 인물을 발굴해 새롭게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찾아볼 장소와 기억해야 한 신앙 선배들이 많다”면서 “교회사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져야 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답사단은 동요 ‘반달’을 작사·작곡한 윤극영 가옥과 전쟁에 참전했다 실명한 참전용사들이 살던 마을 입구를 지켰던 수유동교회를 거쳐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덕성여대를 설립한 차미리사 선생 묘도 찾았다. 이날 묘 입구가 닫혀 있어 아쉽게도 묘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문익환통일의집 전경.

다섯 시간 정도 이어질 예정이던 답사는 예정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넘길 정도로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박서운(68) 구원의감격교회 장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관심이 신앙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서 “더욱이 기독교를 빼고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야기하기 힘든 만큼 교인들이 교회가 걸어온 길에 관해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에 다양한 기독교 답사코스가 개발돼 살아있는 문화 아카이브를 많은 교인이 경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전쟁 중 실명한 참전용사들의 집성촌 초입에 있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교회 전경. 이 교회의 과거 이름은 '실명용사촌교회'였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