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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세 할머니 “내 인생 마지막 투표일지 몰라”…18세 청년 “첫 투표 왔어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중학교에 마련된 여의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권현구 기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10일 전국에 마련된 투표소에 남녀노소 유권자 발길이 이어졌다. 이번 총선은 정책과 비전이 사라지고, 후보들의 막말 공방으로 역대급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나라의 발전을 바라며 주권자의 권리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을 찾았다.

이날 오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제9투표소는 이른 시간부터 유권자들로 붐볐다. 왼손에는 지팡이, 오른손에는 부인의 손을 꼭 잡은 80대 노인부터 대학교 학과 점퍼를 입은 20대 대학생까지 투표소를 찾았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이재준(20)씨는 “지난 대선 때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투표를 못 해 너무 아쉬웠는데 오늘 첫 투표를 하게 되어 뜻깊다”고 말했다.

만 18세를 넘겨 첫 투표권을 갖게 된 양모(18)군도 서울 강남구 대치2동 투표소를 찾았다. 양군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라 정치에 관심을 두기는 버거웠다”면서도 “시민들의 의견을 잘 반영할 사람을 뽑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0일 서울 중구 청구초등학교 야구부 실내훈련장에 마련된 청구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시온(43)씨는 아들 수현(10)군과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김씨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뭐 하는 사람인지 묻기 시작했다”며 “정치인들이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10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펼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유권자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들이 보여준 부끄러운 모습을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하모(79)씨는 “역대급 저질 후보가 많이 나왔다. 서로 헐뜯기만 하는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며 “그렇지만 시민들이 나라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선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제2동 제1투표소에서 만난 직장인 박정우(27)씨도 “지역구에 나온 후보 3명 중 2명이 당적을 바꿨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투표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니까 투표하러 왔다”고 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본투표일인 10일 서울 광진구 기아자동차 대공원대리점에 마련된 능동제3투표소를 찾은 한 어린이가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고 있다. 권현구 기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0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2동 제5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울 강남구에 사는 40대 장모씨는 “정책이나 공약 이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후보들도 지역 현안에 대해서 말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50대 강모씨도 “이번 총선에선 지역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서로 심판한다는 얘기만 들렸다”고 한탄했다.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인증샷 행렬이 이어졌다. 얼마 전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푸바오’의 사진 위에 찍은 투표 인증샷이 등장했다. ‘한화 우승’ ‘LG 우승’ 등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의 투표 인증 용지 위에 도장을 찍은 사진들도 눈길을 끌었다.

대청호에 가로막혀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주민들이 10일 오전 배를 타고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통이 불편한 농어촌 지역에서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 발길이 이어졌다. 대청호 연안의 ‘육지 속 섬’으로 불리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주민들은 배를 타고 투표소를 찾았다. 14가구 18명이 거주하는 마을은 호수와 험한 산림에 둘러싸여 육로가 닿지 않는다. 마을 주민 8명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5t짜리 철선에 몸을 싣고 폭 약 600m의 대청호를 가로질러 투표에 참여했다. 1940년대 화천댐 건설로 육지 속의 섬이 된 강원도 화천군 파로호 동촌1·2리 주민 3명도 이날 오전 배를 타고 구만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카자흐스탄 출신 20대 유권자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했던 박노순(1896∼1971) 선생의 현손녀 최빅토리아(24)씨는 광산구 월곡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투표에 참여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예천에서는 올해 105세인 임차녀 할머니가 자녀의 도움으로 투표했다. 임 할머니는 투표를 마친 뒤 “이번 투표가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투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반드시 참여하고 싶었다”며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국민이 꼭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사고도 잇따랐다. 전북 전주의 한 투표소에선 누군가 기표소 내부에서 촬영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유권자는 자신이 투표하는 모습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인터넷 방송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산의 한 투표소에서는 50대 남성이 함께 투표소를 찾은 20대 자녀의 투표지를 훼손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백재연 김윤 기자, 전국종합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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