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에 AI로 만난 내 아버지”…제76주년 4·3추념식 희생자 복원

입력 : 2024-04-03 15:11/수정 : 2024-04-03 15:17
제76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서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된 고 김병주 씨 모습. 제주도 영상 갈무리.

“아버지, 나 얼굴 알아지쿠과? 아버지 없는 세상, 서러워수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얼굴을 모르니 부르지 못해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76주년 4·3희생자추념식이 봉행됐다.

추념식에선 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한 희생자 영상을 선보여 유족과 추모객의 눈시울을 붉혔다.

복원된 희생자는 1948년 12월 13일 29세 나이로 사망한 고(故)김병주 씨. 그 해 소개령이 떨어지자 김씨 가족은 제주시 화북리 곤을동(4·3으로 지금은 사라짐)으로 거처를 옮겼고, 집에 묶어두고 온 소 여물을 주러 나섰다가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엄마와 남동생도 잇따라 목숨을 잃으면서 당시 다섯 살이던 딸 김옥자(83) 어르신만 살아남았다.

김 어르신은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도 없다.

김옥자 어르신이 AI기술로 복원한 아버지 고 김병주 씨의 사진을 보고 있다. 제주도 영상 갈무리

제주도는 김 어르신의 사연을 올해 추념식 유족 사연으로 선정하면서 평생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영상으로 복원했다.

AI로 복원된 부친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섯 살 딸을 불렀다. 그리고는 “옥자야 오래 기다렸지. 이리 와.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빠가 한번 안아보자”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고 김병주 씨의 모습은 유족 증언을 바탕으로 수천 장의 인물 사진을 참고해 딥페이크 기술로 재현했다.

추념식장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송출되자 김 어르신은 손수건을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복원된 아버지 모습은 한 장의 사진으로 작은 액자에 담겨 김 어르신 손에 쥐어졌다.

이어 김 어르신의 손녀 한은빈(17) 양이 유족 대표로 편지를 낭독했다.

한 양은 “할머니는 매년 새해 달력을 걸 때 제일 먼저 음력 동짓달 스무날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날이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다”라며 “아직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홀로 남겨진 딸이 어둠 속에서 제사를 지내며 느꼈을 슬픔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한 양은 “5년 전 70년 만에 애써 외면했던 곤을동을 찾았지만 할머니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셨다”며 “할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어린 옥자에 머물고 있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그 시간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 양의 편지 낭독이 끝나자 가수 인순이가 ‘아버지’라는 곡을 부르며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 사연 내레이션을 맡은 고두심 씨는 “시렸던 겨울을 이겨낸 따뜻한 4·3의 봄바람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의 씨앗이 널리 펼쳐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추념식은 제주4·3의 정신을 일깨우고, 평화의 씨가 날아 곳곳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해져 슬픈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됐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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