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사(史)에 보기 드문 이종 결합으로 주목 받았던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이 가족 간 분쟁 끝에 결국 무산됐다. OCI와의 통합에 반대했던 창업주의 아들 임종윤·종훈 형제가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이사진 진입에 성공하면서 경영권을 쥐게 됐다.
28일 경기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되며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약 52%의 찬성표를 얻으며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가 됐다.
이날 오전 9시 시작 예정이던 주총은 위임장 집계 등으로 인해 3시간 이상 개회가 지연되며 차질을 빚었다. OCI와의 통합을 추진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는 주총장에 불참했다. 임 부회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찬성표가 48%로, 과반에 미달해 사내이사로 선임되지 못했다.
임종윤 사내이사는 주총 직후 “(승리로) 기쁠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프다”며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가족이 화합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형제의 승리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총 직전까지 양측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우호지분은 모녀 측이 42.66%, 형제 측이 40.57%로 차이가 크지 않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지난 26일 모녀 측 지지를 밝힌 것이 한미약품의 독자적인 성장을 원한 소액주주들의 결집을 일으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주총 의결에 참여한 소액주주 지분은 4.5% 정도로 추산된다.
이외에도 소재·에너지기업인 OCI와의 통합에 대한 의구심, 송 회장 경영 시기 낮아진 주가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12일 한미-OCI 간 통합 계약이 발표된 이후, 종윤·종훈 형제는 자신들을 배제한 채 통합을 진행한 한미그룹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날 선 신경전을 벌여왔다.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형제는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형제 측은 1조원 투자 유치를 통한 바이오 의약품 수탁 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위탁개발(CDO)·임상대행(CRO) 등을 강화해 그룹의 시가총액을 5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한미사이언스 주식은 전날 종가 대비 9.10% 오른 4만4350원에 장을 마쳤다.
상속세 재원 마련은 과제다. OCI와의 통합이 모녀 측의 상속세 해결을 위해 촉발됐지만 형제 측은 아직 명확한 재원 마련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임종윤 사내이사는 3년 안에 706억원의 상속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사 간 통합 결정 번복으로 OCI 측과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주총 직후 OCI홀딩스 측은 “주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 향후 재추진 계획도 없다”며 “한미약품 그룹의 발전을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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