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과 여당이 나서서 의료계와 중재를 자처했지만, 집단행동을 촉발한 전공의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도 전면 파업에 나섰던 전공의가 막판 협상에서 배제됐던 경험 탓에 이번에는 교수들이 주도하는 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전공의 행정 처분 유예 방안이 거론된 이튿날인 25일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박단 대전협 회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라는 물음표 한 자만 적었을 뿐이다. 전공의 처분을 의제로 당과 의대 교수들이 교감했다는 것은 전공의와 논의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대전성모병원 사직서를 제출한 인턴 류옥하다씨도 “교수협의회는 전공의나 의료계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어느 전공의도 (교수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거나, 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 내부에선 의대 교수가 나서는 상황에 대한 불쾌감이 커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가 요구했던 것 중에 하나가 괴롭힘 방지 등 ‘처우개선’이었는데, 전공의 근무 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데 일조한 교수들이 나서서 협상을 하면 전공의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조선대병원 교수가 전공의를 쇠파이프로 상습 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렇다할 전공의 보호 장치가 없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에겐 앞서 의대 증원을 추진했던 2020년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문재인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해 전공의가 단체 행동에 나섰지만, 최대집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파업 중단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전공의를 배제해 반발을 샀다. 이번에도 교수들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만남을 먼저 제안하면서 논의 주제에 대해 전공의와 사전 합의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전공의가 나서지 않으면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의대 교수 등 관련 그룹 모두가 전공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특히 상황 변화 없이 정부가 전공의들의 면허 정지 처분 유예를 검토하면서 향후 협상에서 전공의 주도권이 더 커지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권익 보호 전담창구’ 설치를 약속하는 등 처우 개선에 대한 전공의들의 요구 사항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 등은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여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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