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양모(35)씨는 지난해 12월 위험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직장 동료를 조수석에 태우고 퇴근 중이던 양씨는 좌회전 신호를 받고 정상 주행하던 중 반대편에서 빠르게 직진해오는 차량과 충돌했다. 다행히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과 충돌했지만 몇 초만 늦었어도 조수석이 그대로 받혀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양씨의 차는 반파됐다. 상대 운전자 A씨는 83세의 고령. 그는 “분명히 초록불을 보고 직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CTV 분석 결과, 빨간불에도 A씨는 고속으로 질주했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7일 80대 운전자 B씨가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 구룡터널 교차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연신내역 인근에선 79세 운전자가 8중 추돌사고를 내 1명이 숨지고 1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운전면허 반납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했을 시 현금성 혜택을 주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10만원짜리 교통카드를 제공하고, 전남 구례의 경우에는 5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제공한다.
이처럼 지자체마다 제공하는 혜택은 조금씩 다르지만, 운전면허를 포기할 만큼의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최근 5년간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률은 매해 2%대에 머무르고 있다. 2022년에도 2.6%에 불과했다.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교통사고 중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의 비중은 13.8%를 차지했다. 2022년에는 17.6%까지 늘어났다.
80대 운전자의 사고 비율도 소폭이지만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의 ‘노인운전자 연령대별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65세 이상) 중 80대 이상은 2018년에 7.4%였다가 2022년에는 8.2%로 늘어났다. 70대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매해 절반을 넘고 있다.

경찰은 이러한 수치만으론 고령 운전자 현실을 완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같은 기간 절대적인 고령 운전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25일 “고령 운전자 수가 2019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역시 고령 운전자를 포함한 고위험 운전자의 운전면허 규제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조건부 운전면허를 도입하기 위한 운전자 적성검사 등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국회에서의 입법 또한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 운전면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두고 관련 업계, 학계 등의 논쟁이 뜨겁다. 고령자들의 이동권을 제약하고, 또 택시와 화물운송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권 문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정치권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일산에서 10년 넘게 택시를 운전했다는 이종환(64)씨는 “저도 고령 운전자의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이라면서도 운전면허 규제 강화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80대 넘어서까지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며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 질 수도 있고, 특히 병원을 갈 일도 많을 텐데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대책은 꼭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고령 운전자들이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동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노인 택시 확대 등 인프라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운전 적성검사(갱신)와 달리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참여하는 등 정밀하게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밀 검사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고, 그래서 반발 가능성이 큰 고령 운전자층을 충분히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조건부 운전면허, 적성 검사 정밀화는 물론 필요한 대책이지만, 단지 나이 때문에 운전에 제약을 받는다는 억울함이 들지 않도록 사회가 고령자 운전의 위험성을 계속해서 인식시키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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