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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밥 먹고 함께 자자”…성매매 낙인 찍힌 ‘경의선 키즈’

‘지뢰계 패션’ 보이면 조건만남·성매매 제안해
유명 유튜버 영상 후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제안
비행 청소년은 극소수…법적 처벌 근거는 없어

입력 : 2024-02-22 16:57/수정 : 2024-02-23 14:17
2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출구 인근 경의선 책거리에서 숏폼 영상을 촬영중인 경의선 키즈.

22일 서울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인근 경의선 책거리. 만화에서 나온 듯한 화려한 옷차림을 한 일명 ‘경의선 키즈’ 10대 여성 두 명이 춤을 추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A양(17)은 “최근 두 달 새 이곳에서 저와 친구에게 여러 남자가 찾아와 조건만남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A양에게 다짜고짜 ‘조건만남’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또 다른 남성은 “밥도 먹고 함께 자자”며 에둘러 성매매를 제안했다. 다른 20대 남성은 “담배를 사줄 테니 내가 하는 음란 행위를 지켜보면서 욕을 하고 침을 뱉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다른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됐지만,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출구 인근 경의선 책거리에서 숏폼 영상을 촬영중인 경의선 키즈.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양과 친구의 피해 사례처럼 전국에서 남성들이 경의선 키즈를 찾아 성매매를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유명 유튜버가 일본 가출 청소년 문화인 ‘토요코 키즈’에서 따온 경의선 키즈라는 별칭으로 조건만남을 해오던 일부 가출청소년을 인터뷰한 것이 발단이다. 영상이 공개된 뒤 나쁜 의도를 품고 경의선 책거리를 찾아오는 남성이 부쩍 늘었다.

이런 어른들 때문에 경의선 공원 일대에서 코스프레 취미생활을 즐기는 10대 청소년들이 졸지에 성매매 집단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연남파출소 관계자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후 10대 아이들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하려는 이들이 전국에서 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남성들은 서울 근교인 수원과 인천뿐 아니라 먼 지방에서까지 찾아오고 있다. 연남파출소는 홍익지구대와 연계해 최소 오전에 1번, 오후에 1번 경의선 책거리 일대를 순찰한다. 그러나 경찰이 없는 틈을 노리고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유명 유튜버가 만난 경의선 키즈 인터뷰 영상. 유튜브 캡처

인근 상권에서도 성매매를 위해 경의선 키즈를 찾아오는 남성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홍대입구역 인근 한 편의점 직원인 서장원(30)씨는 최근 ‘조건 만남’을 시도하는 남성을 직접 목격했다. 서씨는 “40대처럼 보이는 남성이 편의점에 들어오더니 ‘어디에 가야 경의선 키즈를 만날 수 있느냐. 조건만남을 하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역을 찾는 10대들은 대부분 평범한 청소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듯한 화려한 블라우스와 주름치마 등을 착용한 이들 상당수는 옷과 패션에 관심이 많고, 경의선 근방에 비슷한 친구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곳을 찾고 있었다.

경의선 책거리 인근에서 만난 B양은 “조건만남이나 파파카츠(일본에서 원조교제를 일컫는 말)를 하는 청소년은 극소수”라며 “조건만남뿐만 아니라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다. 패션의 일종으로 우리만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도 “가출과 성매매를 일삼는 일부 경의선 키즈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순찰을 나가보면 예쁜 옷과 SNS 영상 촬영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아동청소년법에 따르면 이들처럼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범죄 전문 김숙희 변호사는 “조건만남이나 ‘밥을 먹고 잠을 자자’라는 말로 충분히 대가성을 두고 청소년을 성매매로 유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벌 가능하다”고 봤다.

경찰은 현재 경의선 책거리에서 10대 아이들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한 남성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전이 오가는 성매매 등 범법 행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현장에서 조건만남 제안을 적발하거나, 청소년 신고가 들어오면 경고 후 훈방 조치한다고 한다. 그나마 상습적으로 조건만남을 제안하러 찾아오는 이의 인상착의를 파악해 알려주는 정도가 예방책이다.

이곳을 찾은 10대 청소년들은 틱톡 등 SNS에 자신이 코스프레를 하고 춤추는 영상을 올린다. 그런데 이런 SNS 게시글에도 성매매를 요구하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C양(17)는 “X(구 트위터)에서 모르는 사람이 10~15만원 정도의 돈을 주겠다며 조건 만남을 요구한 적이 있다”며 “화려한 패션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X에서 ‘조건만남 하느냐’ ‘얼마가 필요하냐’는 내용의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조건만남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게 불쾌했다”고 덧붙였다.

2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출구 인근 경의선 책거리에 걸린 '청소년상담 1388' 홍보 현수막.

마포구청소년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문화 자체를 즐기는 청소년과 도움이 필요한 위기청소년 모두 존재”하며 “청소년을 비난하거나 조건만남을 제안하는 등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또다른 피해를 받는 청소년들도 있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위험 상황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 본 상담복지센터에서도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기관들과 1388전화상담를 홍보하기 위한 거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지난해 경의선 책거리에서 청소년을 위한 상담 천막을 5회 운영했다. 오는 3월부터 상담 창구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 청소년전화 1388은 24시간 운영되며, 09시-18시는 자치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18시-09시(야간)는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전화상담을 응대한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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