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논의 과정서 의사들, 무시당했다 생각해”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인터뷰
의료 공백 불러온 3가지 이유 있어
“첫해 300~500명, 이후 점진적 조정해야”

입력 : 2024-02-21 10:45/수정 : 2024-02-21 13:31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대형병원의 중추 인력인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고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수술·진료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환자 고통이 커지고 있다. 의대생의 동맹휴학도 확산 중이다. 의·정 강 대 강 대치는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다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왔을까.

왕규창(70)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2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부 책임도 꽤 있다”면서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서 ①편향된 자료의 선택 ②의학교육 과정의 졸속 조사 ③관련 단체와 형식적 소통 등 3가지 문제점을 짚었다. 왕 원장은 “환자를 안 보는 의사는 의미가 없다.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2000명 증원에 대해) 설득이 안 되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한림원은 2004년 설립된 의학 관련 학문 분야 국내 최고 석학단체로, 중립적이고 전문적 연구를 통해 국가보건의료 정책의 자문을 추구하고 있다. 왕 원장은 서울의대 신경외과 교수와 서울의대 학장, 대한소아신경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왕 원장과의 일문일답.

-전공의들이 왜 떠나나.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가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국책기관 등 3개의 보고서를 근거로 들지만, 각 기관들이 어떤 조건을 갖고 그 숫자를 산출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전혀 설득이 안 되고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젊은 의사들이 쓸 수 있는 수단은 이 길(떠나는)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료 현장, 환자 곁을 떠나면 안 된다는 걸 심정적으로 왜 모르겠나. 의사들의 딜레마다. 게다가 의사를 자꾸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니 전공의들 관점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한없이 일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봉사해야 하나’ 생각할 수밖에 없다.”

-편향된 자료 선택은 뭐를 말하나.
“정부는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와 비교한다. 한국은 2.6명이고 OECD 평균은 3.7명으로 적은 게 맞다. 고령화로 환자들의 입원 일수가 늘면 의사가 더 필요할 걸로 본다. 하지만 우리와 의료체계가 비슷한 일본(2.6명) 미국(2.7명)과는 비슷하고 한국의 의사 수 증가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다. 의료 접근성이나 가성비(의료의 질)도 좋은 편이다. 정부는 이런 건 다 빼고 숫자만 갖고 얘기한다. 근거가 불확실하다.”
왕 원장은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학자 중에는 일시적으로 대폭 늘리고 인구감소로 어느 시점이 되면 줄여야 한다는데, 급하게 확 늘렸다가 줄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의학한림원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국민 건강을 수호하고 의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는 선에서 첫해에 300~500명 규모 증원을 시작하고 그 효과를 지속 모니터링하는 기구를 통해 점진적이고 유연하게 합리적으로 의대 정원을 조정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의학교육 현장 조사에 문제가 있었나.
“19일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소속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장이 성명을 냈다. 지난해 말 교육부 주관의 증원 수요조사 당시 각 의대(대학원)의 실제 교육 여건에 비춰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교육 당국에 제출했던 점을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표했다. 증원 수요 조사를 허술하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40개대가 정원을 동시에 몇 배로 늘리면 기초·임상교수나 시설 등 의학 교육의 질 확보가 가능하겠나. 소그룹, 실습강의가 중요한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렵다. 과거 졸업정년제 도입 때 정원의 35%까지 (늘려서) 뽑았는데, 그때도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이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많이, 정원의 65%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모든 의대가 동시에 증원하면 맨파워 확충이 쉽지 않다. 교육부 조사 때 전체를 보지 않고 각 대학 상황에 맞춰, 그것도 의대학장보다는 대학 총장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총장은 당연히 의대가 커지고 수업료가 많이 들어오니까 더 많이 늘리려 한다. 총장에 의한 ‘허수’가 많이 제시됐다는 것이다. 조사 이후 KAMC가 전체적으로 증원 수요 숫자를 조정하려 했는데, 실패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교육부 조사 결과 전국 의대 증원 수요가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 2030학년도에는 최대 4000명에 가깝다고 발표했다.
왕 원장은 또 “복지부가 의료단체들을 많이 만났지만, 의사협회를 제외하고 적지 않은 그룹이 어느 정도 증원에 찬성하며 수치를 제시했는데, 반영된 게 하나도 없다”면서 “하나마나한 소통이었다. 처음부터 정부가 규모를 정하고 형식적 만남을 가진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시한 필수·지역의료 패키지는 어떤가.
“필수·지역의료 공백은 의대 증원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필수·지역의료 해법의 첫걸음이라고 하는데, 필수의료 기피의 본질은 의사 부족보다는 해당 분야의 낮은 수가와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과잉처벌,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에 기인한다. 정부가 2028년까지 10조원을 들여 이런 문제를 실현하겠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에 하겠다는 것이고 예산 확보 등 구체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금까지도 비슷한 정책이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된 건 없다. 그런 학습 효과가 있기 때문에 딱히 와 닿지 않는다. 이번 발표를 듣고서 상황이 좋아지겠구나, 그래서 필수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의사들이 필수·지역의료를 떠나고 있다.”

왕 원장은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디테일한 방안을 내놔야 하고 꼭 실천돼야 한다”면서 “필수의료 붕괴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정부가 계획한 대로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번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공개 토론의 장을 통해 적정 의사 수와 의대 증원 규모의 근거부터 필수·지역의료 살리는 실효성 방안, 의대 교육 역량과 질적 수준, 우수 학생의 이공계 기피, 사교육 시장 과열 등까지 다양한 고민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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