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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서 사라지는 슬픈 붕어빵…‘붕세권’ 더 뜨거워진다

입력 : 2024-02-12 00:03/수정 : 2024-02-12 15:42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근처에 있는 ‘행복한잉어빵’ 사장님 A씨(61)의 노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슈크림 맛 붕어빵. 나경연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행복한잉어빵. 대학생 김선아(22)씨는 슈크림 붕어빵 한 봉지와 팥 붕어빵 두 봉지를 주문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슈크림 맛 붕어빵은 매일 점심 시간 전후로 동이 난다고 한다. 김씨는 “슈크림은 동생이 좋아하고, 팥은 할머니와 부모님이 좋아한다”며 뜨거운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반죽을 채우던 붕어빵 상인 A씨(61)는 슈크림 맛을 찾는 또 다른 손님을 보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그는 “재료가 소진됐으니 내일은 더 일찍 오라”며 웃었다. 이 손님은 설 연휴 때 붕어빵을 잔뜩 구매할 예정이라며 영업 요일을 재차 묻고 떠났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근처에 있는 ‘행복한잉어빵’ 사장님 A씨(61)가 비어있는 붕어빵 틀에 반죽을 넣고 있다. A씨가 완성된 붕어빵을 보온판에 올리자마자 슈크림 맛은 금방 품절됐다. 나경연 기자

한겨울은 지났지만 붕어빵 열풍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붕어빵을 파는 노점 인근 권역을 뜻하는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란 용어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노점 위치와 가격 등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가슴속3천원’은 겨울철 필수 앱으로 자리 잡았다.

원재료 값과 자릿세 상승으로 붕어빵 노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오히려 붕어빵의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2019년 1월과 비교해 이번달 밀가루 1㎏ 가격은 약 30%, 설탕 1㎏ 가격은 약 43% 올랐다. 여기에 자릿세 부담도 커지면서 노점 상인들이 이익을 보기 어려워졌다. A씨도 “한 달에 자릿세로 30만원을 내고 있다”며 “큰 돈은 못 벌지만 맛있어서 매일 온다는 손님 한마디에 버틴다”고 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호떡을 판매하는 청각장애인 B씨(53)가 호떡을 반죽하고 있다. 27년째 호떡을 만들고 있는 B씨는 단체 주문이 몰려도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반죽을 만들어냈다. 나경연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호떡을 판매하는 청각장애인 B씨(53)는 호떡 1개를 1500원에 팔고 있다. B씨는 호떡 가격을 추가로 올릴 계획은 없다. 27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B씨는 호떡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건설 근무 현장에서 해체 기공 관련 일을 하다 지난해 9월부터 여의도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호떡을 판매하는 청각장애인 B씨(53)가 7일 오후 단골 천선아(31)씨에게 호떡과 국화빵을 건네주고 있다. 나경연 기자

이날 오후 3시쯤 호떡과 국화빵을 사러 온 공무원 천선아(31)씨는 B씨와 눈을 마주친 뒤 익숙한 듯 손가락으로 주문을 마쳤다. 단골을 알아본 B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가 나는 호떡 덮개를 열어 포장을 시작했다. 천씨는 “회사 동료들이 호떡을 좋아하는데 이 근처에서 파는 곳은 여기 밖에 없어서 자주 온다”고 전했다.

천씨가 호떡을 기다리는 동안 20대 남성 두 명이 트럭을 기웃거렸다. 이들은 “국회 앞 경찰 기동대에서 나왔다”며 “냄새를 따라 호떡 파는 곳을 30분 가량 찾았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바로 앞에서 30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C씨(65)가 땅콩과자의 탄 부분을 잘라내고 있다. 나경연 기자

가슴속3천원 앱에서 인기 있는 또 다른 간식은 땅콩과자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바로 앞에서 30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C씨(65)는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땅콩과자를 찾아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C씨는 종로의 큰 극장 여러 곳이 문을 닫자 관람객을 상대로 전통 간식을 팔던 노점들이 다 사라지고, 혼자만 남게 됐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붕어빵 노점을 시장의 논리로만 보지 말고, 한국 대중문화의 하나로 간주해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붕어빵을 사 먹는 문화의 본질은 가격이 아니라 뜨거운 걸 나눠 먹으며 몸을 녹이는 따뜻함”이라며 “지자체가 붕어빵 판매 거리나 축제를 활성화하고, 불법 노점까지 전부 양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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