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부진해 ‘악플 세례’를 받았던 조규성(미트윌란)이 끝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후반 추가시간에 성공시킨 그의 극적인 헤딩골은 벼랑 끝에 몰린 클린스만호를 구해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전·후반전과 연장전을 1-1로 마친 후 승부차기에서 4대 2로 이겨 힘겹게 8강 진출을 이뤘다.
이날 MVP는 단연 조규성이었다. 후반 1분 실점 이후 패색이 짙어지던 상황에 조규성이 해결사로 나섰다. 10분이 주어진 후반 추가시간 중 8분이 넘게 흐른 시점에 설영우(울산)의 머리를 맞고 날아온 공을 조규성이 뛰어올라 헤딩 슛으로 연결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국 축구를 구해낸 ‘한방’이었다.
조규성은 경기 이후 중계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다 넣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이)강인이가 크로스를 올려줬을 때 ‘이제 됐다’ 했지만 아쉽게 골대를 맞아 ‘다음에 하나 더 오겠지’ 생각했다”며 “(설)영우가 (내게) 주는 순간 ‘이제 골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이날 조규성은 후반 19분 이재성(마인츠)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앞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는 모두 선발 공격수로 출격했으나 저조한 경기력 탓에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3경기 내내 조규성이 번번이 쉬운 득점 기회를 놓치면서 클린스만호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 기간 조규성이 과거 녹화한 TV 예능 프로그램 분량이 방영되면서 ‘예능 나갈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하라’는 비난 여론까지 등장했다. 조규성의 장발 헤어스타일까지 공격 대상이 됐다. ‘멋 부리지 말고 축구에 집중하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결국 ‘캡틴’ 손흥민이 나섰을 정도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손흥민은 조규성 등을 향한 비판을 의식한 듯 “선수들을 흔들지 말았으면 좋겠고, 보호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며 “많은 팬이 온라인, SNS에서 조금 선 넘는 발언을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선수는 가족이 있고 친구, 동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마음 아프다.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이다”라면서 “선수들은 (팬들이 원하는 경기력 수준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수들을 조금만 더 아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조규성은 이번 대회 네 번째 경기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전매특허인 타점 높은 헤딩으로 기어코 골망을 흔들며 뚝심 있게 자신을 기용한 클린스만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이는 조규성이 35번째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기록한 9번째 골이다. 조규성은 이날 승부차기 3번째 키커로 나서서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며 마지막 순간에도 승리에 일조했다.
한국은 호주와 다음 달 3일 0시30분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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