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죽어버리더라” 소나무 무덤 된 호미곶

“우리 젊을 때 저 소나무를 심었거든. 소나무가 파랗게 꽉 들어차 있었는데, 순식간에 죽어버리더라고. 병이 들어서 그렇다 하대요. 나무 안에 벌레가 들어서….”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주민 한모(73)씨는 잿빛으로 변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청명한 바다와 어우러진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수십 년간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호미곶의 소나무 군락지는 불과 2~3년 사이에 거대한 ‘나무 무덤’으로 변했다. 한씨는 “이 동네도 저 동네도, 살아 있는 나무가 없다”고 했다. 치사율 100%의 불치병, 소나무재선충병이 일대를 휩쓴 결과다.

소나무재선충은 특정 곤충의 몸을 타고 소나무를 옮겨 다니며 급속도로 말려 죽이는 해충이다. 한국은 이미 2007년과 2014년 소나무재선충 대확산을 경험했다. ‘3차 공습’은 지난해 시작됐다. 2021년 30만 그루까지 내려갔던 소나무재선충 피해 나무 수는 2022년 37만 그루로 증가했고, 지난해 4월 기준 106만5900그루로 폭증했다.

지난 24일 대구 달성군과 경북 성주군·고령군, 포항 남구, 경주시 감포읍 등을 돌아본 결과 피해를 ‘몇 그루’로 정의할 상황이 아니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잎이 붉게 시들어가는데, 눈길이 닿는 산지 대부분에서 붉은 소나무가 발견됐다.

포항 호미곶 해안가 소나무는 ‘전멸’이나 다름없었다. 일부는 메말라 비틀어진 소나무 기둥이 주택가 쪽으로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렇게 말라 죽은 소나무들은 산불·태풍 등 자연재해 시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된다.

정부는 지난 11일 대구 포항 안동 등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소나무는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분포하고,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재선충이 있다. 특별방제구역에서 빠져 있는 경주의 경우 포항에서 감포읍으로 넘어가자마자 붉은 소나무가 즐비했다. 소나무재선충 발병 시 지정되는 ‘소나무류 반출 금지’ 구역은 17개 시·도 중 15개 지역에 퍼져 있다. 소나무재선충 안전지대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다.

소나무재선충 방제는 매개충이 번데기 형태로 나무 속에 머무는 10~3월 겨울에 진행된다. 정부는 감염 나무에 QR코드가 박힌 흰색 띠를 둘러 관리하지만 나무를 베는 속도보다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한국에 자생하는 육송·해송은 재선충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재선충에 취약하다. 이런 소나무가 국내 산림의 25%다.

전문가들은 2014년 2차 확산을 잠재운 뒤 소극적으로 진행된 방제가 현재 위기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일부 극심 지역은 ‘방제 임계점’을 넘어 손쓰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림재해 전문가인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방제 포기 상태나 다름없는데 이를 책임질 주체가 아무도 없다”며 “대구와 포항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주변 지역 확산은 물론 가야산국립공원도 위험하다. 안동의 송이버섯 생산지도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항·경주·대구=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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