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에 관한 일본 경찰 수사 기록이 추가로 공개됐다.
이 자료에는 납치범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1등서기관이 특정된 경위와 김 전 대통령의 진술 등이 담겨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건 발생 50주년을 맞아 정보공개 청구로 일본 경찰의 사건 관련 자료를 입수해 25일 공개했다.
‘김대중 씨 납치사건 관계(수사상황)’라는 제목이 달린 13쪽 분량의 이 문서는 일본 경찰청 외사과가 김 대통령 취임 직전인 1998년 2월 2일 자로 작성했다.
‘비(秘)(무기한)·사용 후 폐기’라는 도장이 찍힌 이 문서에는 납치 실행범 중 한 명으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파견 요원인 김동운 주일 한국대사관 1등서기관을 특정한 경위가 담겨 있다.
1973년 8월 8일 반유신 활동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은 도쿄의 그랜드팰리스호텔 22층 방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당했다가 닷새 뒤인 8월 13일 서울 동교동 자택 인근에서 풀려났다.
문서에 따르면 납치 사건을 목격한 이 호텔 투숙객은 경찰에 “위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호텔 3층에서 탔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명의 남성이 ‘도와줘, 살인자’라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는 “5명의 일행 중 김동운이 있다”는 취지의 증언도 했다.
납치범이 현장에 남긴 배낭에 대한 수사 결과도 기재돼 있다. 배낭 판매처를 등산용품 제조판매회사로 특정해 수사한 결과 사건 이틀 전 2명의 남자에게 배낭 3개를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점원은 경찰이 제시한 사진을 보고 “구매자 가운데 한 명이 김동운을 닮았다”고 증언했다.
일본 경찰이 김 전 대통령이 납치된 뒤 끌려간 곳에 대한 수사 상황도 실려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 경찰에 보낸 진술에서 “고속도로에서 길을 물어본 뒤 한 시간 달려 ‘안의 집’에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김동운에 대한 출두 요청 현황’이라고 적힌 문서에는 사건 발생 다음 달인 1973년 9월 일본 경찰청이 외무성에 김 서기관을 직접 조사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한국 측에서 응하지 않겠다고 회답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김대중 납치사건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의해 실행됐으며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했다는 조사 결과를 2007년 10월 발표했다.
일본에선 김 전 대통령 납치 사건 수사가 법적으로 미결 상태다. 유력 용의자가 국외에 있어 시효가 정지돼 있다.
송세영 선임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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