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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고, 차 치우라고… 일상 속 갈등이 범죄로

[분노사회 대한민국]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 2023-12-10 18:20/수정 : 2023-12-11 10:0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사회에서 갈수록 분노가 공격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일상 속 갈등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흉기 난동 사건도 벌어진다. 온라인에서는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공분을 넘어 증오와 혐오에 가까운 반응이 쏟아진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0일 “분노라는 감정이 파괴적,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전대미문의 위험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분노를 잠재우고, 그 원인을 해소할 사회적 기제도 작동을 멈췄다. 정치는 오히려 대중의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고, 시민사회는 이를 의제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분노사회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원인을 짚고, 해법을 모색한다.

코로나가19가 할퀴고 간 가정, 분노는 ‘집 안’에서 자라났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 분노와 폭력이 꿈틀대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고립돼 지내며 가정폭력은 더욱 심화했다.

국민일보가 10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건수는 코로나19 시기부터 증가했다. 상해 범죄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 8151명이었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19년 1만2042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2020년 1만153명, 2021년 1만540명, 2022년 1만272명으로 1만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전체 가정폭력 범죄 중 평균 70.89%를 차지했다.


어긋난 분노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녀로도 향했다. 아동학대 범죄 건수는 2018년 3693건에서 서서히 증가하다 2021년 1만572건으로 급증했다. 가해자 79.08%가 부모였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활동이 제약·통제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나 반발심 등이 분노로 이어지는데 그 분노는 약자인 배우자나 아이, 노인으로 향하게 된다”고 말했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가정폭력 범죄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홍미리 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본부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112신고는 줄고, 가정폭력 상담은 2020년 이후로 줄었다. 김 전 연구위원은 “신고와 상담의 동반 감소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전환을 위한 연구’에서 코로나19는 피해자의 고립화와 가족 간 갈등,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진단했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정폭력 피해가 도움 요청이나 신고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사회 전반적인 분노를 잠재우는 것과 함께 피해자가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웃 간 층간소음·주차시비, 일상 속 갈등이 강력범죄로

지난해 11월 씨름선수 출신인 A씨(33)는 평소 겪던 층간소음을 항의하기 위해 윗집 주인 B씨를 찾았다. B씨는 “오해를 풀자”며 A씨에게 술자리를 권했고 두 사람은 인근 술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술자리는 곧 참혹한 범죄현장으로 변했다. 대화 중 감정이 상한 B씨는 A씨의 뺨을 때렸고, 이에 격분한 A씨는 B씨를 약 50분간 160차례 폭행했다. 평소 지혈 장애가 있던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얼굴과 머리, 가슴, 배 등 다발성 손상에 따른 저혈량 쇼크로 사망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주차시비로 인한 갈등이 범죄화 되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광주시에서는 주차 시비를 벌이다가 1m 길이 일본도(진검)를 휘둘러 이웃을 살해한 70대 A씨가 징역형에 처해졌다. A씨는 당시 B씨와 주차 관련 문제로 다투다가 격분해 1m 길이 일본도로 B씨의 손목 부분을 내리쳤다. B씨는 A씨가 휘두른 진검에 양쪽 손목이 절단돼 과다출혈로 인한 심정지 상태로 병원 이송돼 치료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지난 4월 춘천에서는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은 70대에게 둔기를 휘두르며 위협한 50대가 벌금형에 처해졌다. 당시 50대 남성은 주차 시비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며 수차례 둔기를 휘두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처럼 층간소음이나 주차시비와 같은 일상 속 갈등이 강력범죄로 번지고 있다. 이웃간의 층간소음 시비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22년까지 과거 10년간 층간소음 범죄와 관련해 법원에서 선고한 형사1심 판결문 분석 결과, 총 734건의 선고 중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방화) 비율이 총 73건으로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가 10일 단독 입수한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의 ‘층간소음 범죄의 특성과 경찰의 대응방안’ 보고서(김성희) 분석 결과다.

살인 17건, 살인미수 45건으로 그 비율(62건)이 층간소음 관련 범죄 비중에서 8.4%를 차지했다. 방화(9건)는 1.2%, 강간(2건)은 0.3%로 기록됐다. 734건 중 상해(163건)가 22.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협박(140건)·폭행(117건)·살인 및 살인미수(62건)·폭력행위 등(52건)·손괴(45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성적 모욕, 특수협박, 재물손괴, 직무유기 등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층간소음이 이웃간에 대화로 해결되지 못하고 범죄화 돼 법원으로 오는 경우도 갈수록 증가 추세다. 2013년 43건(5.9%)에 불과하던 층간소음 범죄 관련 선고는 2018년 70건(9.5%), 2020년 86건, 2022년 125건(17.0%)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실제로 울산지법은 윗집의 층간 소음으로 화가 나 이에 복수하기 위해 위층을 향해 우퍼스피커를 설치한 후 약 1년간 망치 소리, 귀신 울음소리, 코 고는 소리 등 96차례 음향을 전파한 A씨에게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과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지난달 선고했다.

층간소음 문제를 인식한 후 6개월~1년간 과도기를 거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의 감정이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층간 소음의 골든타임을 6개월 정도로 보는데, 통상 1년이 지나면 서로의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대면하게 되고 이때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문제는 당사자 외에 제3자나 기관이 개입해 갈등을 해결할 현실적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가 있지만 분쟁 해결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 경찰 개입으로 갈등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의 화를 키워 공무집행방해죄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김성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전세계적으로 층간 소음 문제를 단순히 데시벨(㏈)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며 “미국이나 유럽은 층간소음 같은 문제가 형사법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개인대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작은 갈등이 범죄화되는 과정엔 억눌려있던 ‘분노’가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열심히 사는데도 힘들다’는 억눌려진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며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고 익명성을 추구하면서 상대를 이웃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여기다보니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분노 이전에 억울함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남과 비교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면서 억울한 감정 또한 증가하고 있다”며 “나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이로 인한 동조현상도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박재현 이가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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