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편든 국방부 장관, 기가 찬다” 故 김오랑 조카 심경

지난 2013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참군인 김오랑 추모제'에서 묘비 앞에 고인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맞서다 전사한 고(故) 김오랑 소령(중령 추서)의 조카가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소감을 밝혔다.

김영진(66)씨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정해인 배우가 삼촌과 많이 닮아서 보기 좋았다”며 “삼촌이 죽는 장면은 눈물이 나서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김 소령은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델이다.

김씨는 “요즘 보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지 걱정된다”고도 우려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19년 한 유튜브에 출연해 “12·12는 나라를 구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서울의 봄’ 개봉 다음 날에는 전직 군인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전두환씨 2주기 추모식을 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기도 안 찬다. 어떻게 반란을 편드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될 수 있느냐”며 “이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판단이 다 끝난 사안에 대해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역적의 가족이란 소리냐”고 반문했다. 이어 “시간이 흐르면서 삼촌의 이름이 잊히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1979년 12월 13일 0시20분 신군부의 제3공수여단 병력은 M-16 소총을 난사하며 특전사령부를 급습해 반란을 진압하려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김 소령(당시 35세)은 권총을 쏘며 쿠데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김씨가 삼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2·12 군사반란이 있기 한 달여 전이었다. 12·12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김 소령이 숨졌다는 소식이 가족에게 전달됐다. 김 소령의 형들은 서둘러 시신이 안치된 서울 국군통합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총탄을 맞은 김 소령의 시신은 거의 두 동강이 나 군의관이 애써 봉합하고 있었다. 신군부는 김 소령의 시신을 특전사 뒷산에 암매장했다.

김 소령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죽은 충격에 치매를 앓다가 2년여 뒤 세상을 떠났다. 김 소령의 큰형이자 김씨의 아버지인 김쾌출씨도 동생 이름을 부르며 연일 술을 마시다 1983년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소령의 아내 백영옥 여사는 남편의 죽음 뒤 시신경 마비가 심해져 완전히 실명했다. 민주화 이후 백 여사는 전두환·노태우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했으나 1991년 자신이 운영하던 불교 복지기관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 김해에서 개인 사업을 하던 김씨는 2000년께 김 소령의 특전사 20년 후배인 김준철씨와 함께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를 꾸렸다. 직계 후손이 없는 삼촌의 희생을 알리고자 나선 것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