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 같은 동료들과 시즌 내내 동고동락했다.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복을 빼입은 ‘푸른 눈의 에이스’ 에릭 페디의 목소리가 떨렸다. 플레이오프 5차전 패배 직후 눈물을 보였던 그는 한 달 만에 선 카메라 앞에서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프로야구와 NC 다이노스 팬들을 향한 진심이 전해졌다.
페디는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2023 KBO 시상식에서 5관왕에 등극했다.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3대 타이틀에 올해 신설된 수비상과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쓸어 담았다.
15명의 쟁쟁한 후보가 도전장을 냈지만 페디 앞에선 모두 조연이었다. 기자단이 행사한 111표 중 102표(91.9%)가 그의 몫이었다. 홈런·타점 2관왕 노시환(한화 이글스)이 6표에 그칠 만큼 격차가 컸다. 페디는 정규시즌 30경기에 등판해 180⅓이닝 동안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을 올렸다. 1986년 선동열 이후 37년 만에 20승과 200탈삼진을 동시 달성했다.
포스트시즌은 한국에서 맞은 최대 시련이었다. 팀은 연전연승하며 플레이오프까지 올랐지만 페디는 부상 여파로 1경기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 ‘태업’ 아니냐는 비난까지 쏟아졌지만, 그는 탈락 확정 직후 눈물로 답을 대신했다.

MVP 수상 직후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입을 연 페디는 한국에서 보낸 1년을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돌이켰다. 코치진과 동료들은 물론 통역과 개별 트레이너에게까지 일일이 공을 돌렸다. 팬들 언급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마산·창원은 내게 제2의 집과 같다”며 서툰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앞서 가을야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던 페디는 이날 수상을 위해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함께 입국한 부친 스콧은 단상에 오른 아들을 끌어안고 꽃다발을 전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그는 “(페디는) 항상 열심히 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며 “나는 운 좋은 아버지”라고 미소 지었다.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 문동주는 평생 한 번뿐인 신인왕 영예를 누렸다. 전체 111표 중 85표(76.6%)를 독식하며 최대 경쟁자로 꼽혔던 윤영철(KIA 타이거즈)을 70표 차로 여유 있게 제쳤다. 2006년 류현진 이후 17년 만에 한화 소속으로 계보를 이은 그는 “트로피가 꽤 무겁다”며 “앞으로 이 무게를 잘 견뎌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설된 수비상은 유격수 부문에서 공동 수상한 오지환·박찬호를 비롯해 모두 10명에게 돌아갔다. 통합 챔피언 LG 트윈스가 가장 많은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오랜 프로 생활 끝에 타이틀을 거머쥔 베테랑들도 눈길을 끌었다. 데뷔 14년 만에 처음 개인 수상에 성공한 도루왕 정수빈(두산 베어스)은 “다음엔 최다안타 상을 받아보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앞서 세 차례 최다안타 상을 타고도 타율 1위를 번번이 놓쳤던 타격왕 손아섭은 “내년엔 꼭 우승 트로피를 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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