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는 그럴듯한 속임수로 진실을 가립니다. 가려진 진실은 때론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최근 판치는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가치를 왜곡하고 혹세무민하며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입니다.
123년 전 이 땅에서도 ‘고종의 가짜 칙령’으로 전국 기독교인과 선교사가 모두 목숨을 잃을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판 부림절 사건’으로 기록될 뻔했었죠. 부림절은 페르시아 총리 하만의 조작 사건 멸절 위기에 놓였던 유대인이 위기에서 벗어난 걸 기념하는 이스라엘 축제입니다.
1900년 11월 19일, 해주에서 순회 전도 중이던 호러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는 은율읍교회 영수 홍성서가 전달한 전갈을 펼쳐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다음 달 6일 전국 유학도들은 가까운 서원에 모여 서양인과 기독교인을 죽이고 교회와 학교, 병원을 불태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고종 황제의 ‘칙령’이었다는 사실이었죠. 황제의 뜻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실상을 파악했고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짜 칙령이었던 것이죠.

황실 재정을 담당하던 이용익과 김영준 등이 꾸민 일이었습니다. 친러 보수파였던 이들은 윤치호와 이상재 등 친미 개화파를 제거하기 위해 ‘기독교인 박멸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이들은 독립협회와 서울 시내 전차 운행에도 반대했던 보수파였습니다.
마침 같은 해 중국에서 반외세·반기독교 운동인 의화단사건이 벌어지자 이 분위기를 활용해 우리나라에서도 외세 배척 운동을 펼치려 한 것이었죠. 이들은 황제의 칙령을 위조한 뒤 이 통문을 지방관청에 보냈습니다. 1888년 선교사들이 어린이들을 잡아먹는다는 뜬소문으로 시작된 ‘영아 소동’에 이어 이 땅에서 이뤄진 조직적 반개신교 운동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언더우드 선교사는 시급히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주한미국 공사이던 앨런을 통해야 했죠. 한국어나 영어로 전문을 쓰면 중간에서 반드시 정보가 샐 것으로 봤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평소 갈고 닦은 라틴어로 위기 상황을 알렸습니다.
“Omnibus prefecturis mandatum secreto mittus est In mensis decima Idibus omnes Christianes occident(모든 현감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10월 15일에 기독교인 다 죽이라 하였으니).” 전문에 쓰인 ’10월 15일’은 양력 12월 6일을 의미합니다.
이 내용과 함께 황제의 칙령이 위조됐다는 사실을 라틴어로 쓴 뒤 보안을 위해 의사 에비슨 선교사에게 먼저 보냈습니다.
무사히 전보를 받은 에비슨 선교사는 이를 영어로 번역해 앨런 공사에게 알렸죠. 반신반의하던 앨런 공사도 매사에 신중한 언더우드의 전보가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 뒤 곧바로 황제를 알현해 음모를 알렸습니다. 황제는 이미 선교사들 사이에서 이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새로운 칙령을 내렸습니다.
기존 칙령은 조작됐고 기독교인을 보호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에비슨 뿐 아니라 평양의 마펫 선교사와 황해도 일대에서 사역하던 가톨릭 사제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발 빠른 조치로 서울의 외국 공사관들도 곧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기존 칙령을 무시하라는 내용의 회람을 돌렸습니다.
한국판 부림절 사건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라틴어 편지 덕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칙령을 위조한 이들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이 내용이 처음 소개된 건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릴리아스 언더우드가 1904년 쓴 ’상투잡이와 보낸 15년’에서였습니다. 최근에는 옥성득 미국 UCLA 교수가 쓴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에도 실렸습니다.
옥 교수는 자신의 책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썼던 라틴어 전보의 친필을 공개 했습니다.
옥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사역했던 아서 웰본 선교사의 손녀 프리실라 웰본이 조부가 남긴 선교 자료를 정리해 2008년 펴낸 ‘아서 고우스 투 코리아(Arthur Goes to Korea)’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친필을 발굴했습니다.

방한 중인 옥 교수는 2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는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보수파를 중심으로 반 선교사·반외세 세력이 규합하던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기독교인 척살 칙령 위조 사건은 망국의 과정, 과도기에 벌어질 수 있던 일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는 큰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 위기를 조장하는 일은 지금도 수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죠.
신앙의 후배들이 복음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뭘까요. 무엇보다 복음을 잘 알고 지키며 가짜를 경계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기독교인 말살을 막았던 123년 전 11월 19일의 라틴어 전보를 통해 진실의 힘이 지니는 가치를 생각해 봅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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