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문연 경상비 전액 및 사업 예산 97.5% 삭감…직원들 호소문 발표

Է:2023-11-27 05:30
:2023-11-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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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사업 ‘방방곡곡 문화공감’, 내년부터 예경에 통합
이승정 전 회장 재선 논란이 사태 악화에 영향끼친 듯

한국문예회관연합회 홈페이지.

전국 문예회관(공공극장)을 회원으로 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의 2024년 예산이 인건비 포함 경상비 전액삭감 및 사업비 97.5%가 삭감된 것과 관련해 직원들이 호소문을 발표하며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재논의 및 대책을 요청하고 나섰다. 또한, 지난 24일 호소문을 발표한 한문연 직원들은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서명한 지지 연명부를 오는 28일과 12월 1일 두 차례로 나눠 문체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한문연, 1996년 설립… 225개 문예회관 회원 가입

한문연은 전국 문예회관의 발전과 협력 증진, 문화예술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1996년 설립해 2012년 법정법인으로 전환된 문체부 유관기관이다. 225개 문예회관으로부터 받는 연간 회비(재정자립도에 따라 400~600만원) 12억원이다. 하지만 한문연의 운영에서 그동안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2023년 기준으로 위탁사업인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등으로 받는 문예진흥기금 320억원이다. 원래 2004년 복권기금이 투입되며 시작돼 2018년 문예진흥기금으로 이관됐다.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문연 조직도 계속 커져서 현재 정규직 31명, 계약직 20명 정도로 이뤄져 있다. 다만 2024년 인건비 포함 경상비 전액삭감 및 사업비 97.5% 삭감으로 계약직은 올 연말로 계약 종료가 통보됐으며 정규직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문연 직원들은 호소문을 통해 “한국문예회관연합회의 주인은 전국의 225개 회원기관이며 나아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믿는 국민 모두다. 따라서 30여 년간 지속해온 연합회의 역사가 단절된다는 것은 지역 문예회관의 발전에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또한 예산삭감으로 인해 발생한 직원들의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수립해 주길 호소한다”고 피력했다.

한국문예회관연합회 직원들이 전국 문예회관을 포함한 예술계 관계자들에게 보낸 호소문.

최근 한문연의 상황은 윤석열 정부의 ‘지방공공기관 혁신’ 과제 중 하나인 유사·중복 기능 조정의 일환으로 문체부가 지난 9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을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의 ‘공연유통협력 지원사업’으로의 통합을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두 사업의 목적이 우수 공연의 전국 유통 확대를 통한 국민의 예술적 경험 확장과 공연시장 활성화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시작은 고유사업이었다가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에 포함돼 진행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역시 서울아트마켓에 통합될 예정이다.

문체부, 예술계의 유사한 지원사업 통폐합 추진

한문연 관계자는 “그동안 한문연이 고유사업을 키우지 못하고 위탁사업에 매몰됐었던 것을 반성한다. 다만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방침과 관련해 사업의 통폐합과 관련해 협의와 이관 시간을 줬으면 충격이 덜했을 것 같다”면서 “현재 문체부와 국회 기재부에 한문연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비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만큼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사업비 증액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연계에서는 한문연이 최근 존폐 위기 수준에 처한 것은 유사·중복 기능 조정 외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승정 전 한문연 회장의 재선 논란과도 관련 있다고 본다. 연임에 도전한 이승정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회장 선출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10표 차로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직후 당선인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과 선거 관리 불공정 관련 민원이 문체부에 접수됐다. 선거를 앞두고 ‘회장선거관리규정’을 새로 만든 것도 회장 연임을 위한 정관 개정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한국문예회관연합회가 주최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아트마켓 부스전시. 한국문예회관연합회

이에 따라 문체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사무 검사를 한 결과, 정관을 위반하는 투표권 재위임 사례 10건과 선거 관리 불공정 사례 등을 확인했다. 문체부는 올해 여러 차례 한문연에 총회를 열어 재위임 인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지만, 한문연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문체부는 지난 8월 이승정 당선인의 취임을 불승인했다. 여기에 회장 대행을 맡던 문체부 출신 서영철 사무처장이 조만간 금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취임을 앞두고 있어서 한문연은 앞으로도 문체부나 기재부 등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문예회관 관계자는 “이승정 전 회장이 문체부와 계속 각을 세운 것도 최근 한문연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 됐다고 본다”면서 “한문연의 공과가 있지만 그동안 지역 문예회관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한문연, 고유사업 키우지 못하고 안주하다 침몰 위기

반면 이번 한문연 사태가 그동안 문예회관 연합기관으로서 고유의 역할 대신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을 통해 사실상 지원기관으로 변질된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비슷한 맥락의 지원사업이 늘어난 상황에서 한문연이 지역 문예회관의 역할 확대를 위해 움직이는 대신 지원사업에 안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문연이 지원사업을 놓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공공성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참고로 한문연과 비슷한 공공극장 연합기관인 일본의 전국공립문화시설협회는 공연장과 관련한 각종 실무 가이드부터 각종 통계조사, 연구, 보험사업, 리노베이션 컨설팅 등 매우 다양한 사업을 해온 덕분에 높은 공익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이승정 전 한국문예회관연합회 회장이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개최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승정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재선됐지만 규정에 어긋나는 투표권 재위임 및 선거 관리 불공정 등의 이유로 1년만인 지난 8월 문체부로부터 취임 불승인을 받았다. 한국문예회관연합회

전직 한문연 관계자는 “전국 문예회관은 직접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서울과 지역의 문화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면서 “한국 공연 생태계에서 모세혈관 같은 문예회관들의 연합회인 한문연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지만 그동안 수장들의 리더십 부재로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한문연 회장과 사무처장 등 경영진 임명과 각종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체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예경이 내년부터 방방곡곡 사업 제대로 진행할지 우려

문화예술계에서 지원 중복으로 예산 비효율이 적지 않았던 만큼 윤석열 정부의 지방공공기관 혁신 추진은 방향성 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문연의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을 이관받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예경이 2022년 시작한 공연유통협력 지원사업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인력 및 경험 부족으로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까지 매끄럽게 처리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현실적으로 내년 상반기엔 사업 진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또다른 지역 문예회관 관계자는 “문체부가 산하기관의 유사·중복 기능 조정으로 지역 문화예술 지원 시스템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책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문예회관과 예술단체 등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면서 “문체부는 예경이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과 공연유통협력사업을 공백없이 실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한 문체부는 이참에 한문연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고도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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