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전 과정 평가(LCA) 데이터를 갖춘 제품을 공급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미래 먹거리’인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 향후 중국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친환경 시장에서의 핵심 경쟁력으로 데이터 제공 역량을 꼽은 것이다. LCA란 특정 제품이 생애주기 전 단계에 걸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측정하는 체계다.
‘진짜’ 친환경 제품임을 증명할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산업계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외 고객사들은 제품에 들어간 재활용 소재의 이력,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등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한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생산 비용이 비교적 높은 친환경 제품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서는 친환경성을 입증할 정보가 필수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은 20~21일 열린 ‘대한민국 친환경 패키징 포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폐플라스틱 이력 관리 시스템을 선보였다. 폐플라스틱 확보, 재활용 소재 생산, 최종 제품 생산까지 모든 과정 대한 LCA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공유하는 체계다. 향후 소비자는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제품에 들어간 재활용 소재가 ‘거쳐온 길’을 확인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 SK에너지,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등이 생산하는 석유화학 관련 전 제품에 대해 LCA를 마쳤다.
GS칼텍스는 지난달 자동차용 폐플라스틱 재활용 소재에 대한 LCA를 구축해 탄소발생량을 산출했다. LG화학은 지난해 국내 생산 제품 LCA를 마쳤고, 올해 안에 해외 생산 제품 LCA까지 끝낼 계획이다.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부터 전문 컨설팅 업체와 협업해 전 제품 LCA를 추진 중이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중소 협력사를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자체 구축한 탄소배출 이력 관리 자동화 시스템(SCEMS)을 협력사에 무상 배포했다. 원료 채취부터 부품 및 차량의 제조·운송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이력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수집하는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였다. 이에 앞서 약 360개 협력사에 탄소중립 대응 역량 증진을 위한 오프라인 및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장의 요구와 각국 규제 동향을 두루 고려한 조처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최근 완성차 업체를 비롯한 고객사들과 거래하면서 가장 많이 요구받은 정보가 제품 단위당 탄소배출량”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LCA 법제화를 진행하고 있다. 입법 논의 단계인 유럽연합(EU)의 폐차 처리 지침 개정안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재활용 소재에 대한 증명과 추적성 강화를 요구한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제품의 의미가 생애주기와 공급망으로 확장하는 추세”라며 “탈탄소 시대에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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