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고문을 받고 신분을 속여 활동하는 ‘프락치’를 강요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황순현)는 22일 이종명 박만규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 1명당 9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두 사람은 각각 3억원씩을 배상하라며 지난 5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불법 구금당하고 폭행‧협박을 받은 뒤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으며 이후에도 감시‧사찰받은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인정돼 위자료 지급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학군장교(ROTC) 후보생이던 이 목사는 1983년 9월 영장 없이 507보안대에 연행돼 일주일 넘게 고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박 목사도 같은 시기 육군 보안사령부 분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의 한 아파트로 끌려가 열흘가량 구타‧고문을 당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조사한 뒤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 두 사람을 포함한 피해자 187명을 1차 진실규명 결정 대상으로 인정했다. 당시 진실화해위가 확보한 전체 피해자 명단은 2921명이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원고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하지만, 진실화해위 결정에 기초해 권리행사를 하는 원고들에게 새삼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건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목사는 선고 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이 저희가 40년 전에 당했던 국가폭력을 일일이 열거하며 인정해줘서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피해자들이 일일이 법원에 소송할 게 아니라 국가가 먼저 보상이나 치유 등 진실화해위 권고 사항을 이행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사건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책정된 위자료와 관련해 “국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줄 만큼의 금액인지,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금액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며 “당사자들과 논의해 항소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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