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구 1만명 당 1명이 도벽과 도박, 약물 남용, 자살 시도, 범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여성이 남성 보다 발병률이 높았고 연령별로는 20대, 지역별로는 서울에 유병자가 많았다. 국가 데이터베이스 기반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석정호 교수팀은 2010~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DB의 맞춤형 데이터를 활용해, 국내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의 유병률과 임상적 특성을 조사한 연구 논문을 연세의학저널(YMJ)에 발표했다.
분석 결과 경계성 인격장애로 진단된 국내 환자는 2010년 3756명에서 2019년 4538명으로 10년간 약 1.2배 증가했다. 인구 1만명 당 유병률로 추산하면 같은 기간 0.96명에서 1.06명으로 높아졌다. 성별로는 남성 환자는 0.81명에서 0.80명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반면, 여성 환자는 1.12명에서 1.32명으로 소폭 늘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같은 기간 2.42명에서 3.41명으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유병률은 줄어드는 패턴을 보였다. 지역별(2010~2019년 평균)로는 서울의 유병률이 8.71명으로 가장 높았으며 대전(6.62명)과 대구(5.90명)가 뒤를 이었다. 전남의 유병률이 2.35명으로 가장 낮았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서적 불안, 자아 정체성 문제, 대인 관계 등을 포함해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복합 인격 장애를 일컫는다. 권태감과 공허감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며 자제력이 부족해 충동적인 행동 양상을 보인다. 이로 인해 도벽과 도박, 약물 남용의 위험이 높고 환자의 약 60~80%는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사회적 부담이 큰 질병이다.
일부 범죄 심리학자나 정신 분석가들은 최근 또래 여성을 살해해 충격을 준 정유정(23)이나 역시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유기한 고유정(40)도 경계성 인격장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편 국내 경계성 인격장애 유병률은 다른 국가 유병률(2.7~5.9%)에 비해선 현저히 낮았다. 연구팀은 국내 유병률이 과소 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석정호 교수는 2일 “경계성 성격장애의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유병률은 임상 현장에서 경계성 인격장애가 매우 낮은 비율로 진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국제적 연구 흐름에 맞춘 진단율 향상과 치료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 경계성 인격장애가 자살 위험성과 의료적 부담이 큰 질병임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인식 개선과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 예산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석 교수는 아울러 “향후 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한 유전적·환경적 발병 요인, 개인적 특성에 대한 추가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