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이제라도 인간다운 행동을 하기 바랍니다. 우리 북한 사람들도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탈북 청년이 17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을 고발했다. 그는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영어 대신 한국어로 이같이 말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한 일침이었다.
이날 북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한 안보리 공개 회의에 나선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외국어대에 재학 중인 김일혁씨였다. 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그는 “북한 주민에겐 인권도, 표현의 자유도, 법치주의도 없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역에 시달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릴 적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는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에 동원됐고, 땀 흘려 기른 작물은 수확 후 대부분 군대로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1년 가족과 함께 탈북한 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며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고발하는 활동 등을 해 왔다.
김씨는 가족의 탈북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모가 어린 자녀와 헤어진 채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개월간 고문과 구타를 당해야 했다고 고발했다. 그는 고모가 체포돼 가족과 헤어질 때 조카 나이가 고작 3살, 5살이었다면서 “나의 행동으로 고모와 두 조카가 왜 그런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자유를 북한 주민이 모두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한다”고 말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김씨 발언 이후 “오늘 우리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세상에 알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김씨의 용감한 발언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를 향해 “당신은 북한 주민의 존엄성과 권리를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날 다른 이사국 대표들도 저마다 자신의 발언 순서에서 용기 있게 증언에 나선 김씨에 감사를 표하면서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황준국 유엔대사는 국제사회가 미래 세대를 위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황 대사는 “최근 열 명의 탈북 청년을 만났는데 이들 모두 오늘 김씨가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겪은 특별한 경험을 얘기했다”며 “우리는 외부 세계의 정보와 완전히 차단된 채 무지막지한 세뇌 사회에서 자라고 있는 북한의 젊은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할 일은 이 미래 세대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희망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공개 회의가 열린 것은 2017년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공개회의에 앞서 안보리가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8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