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수도 키이우 중심부에 위치한 기념비에서 구소련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 문장을 제거하는 등 러시아 흔적 지우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어머니 조국(The Motherland)’ 기념상의 방패에서 구소련의 상징인 낫과 망치로 된 기존 문장을 제거하고 우크라이나의 국장인 삼지창 문양을 설치했다.
높이가 62m에 달하는 어머니 조국 기념상은 칼과 방패를 든 여성 전사를 형상화해 강철로 만들어졌다. 기념상 옆에는 국립 제2차대전사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1981년 키이우 드니프로강 우측 제방에 옛 소련의 제2차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42년 만에 방패의 문양을 교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달 말 조국 기념상의 방패에서 옛 소련 문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당초 지난 5일 새로운 삼지창 문양으로 대체할 예정이었으나 악천후와 러시아의 공습경보로 하루 뒤인 6일 새 문양을 설치했다. 추가 마무리 작업을 거친 뒤 오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전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최종 재탄생할 예정이다.
삼지창 문양은 우크라이나의 뿌리가 된 중세 동유럽 국가 ‘키이우 루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성기를 이끈 볼로디미르 1세(재위 978∼1015년)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992년 이 삼지창 문양을 국장으로 채택하고 국기, 국가와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세 가지 공식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시아 정부를 쫓아낸 2013∼2014년 마이단 혁명을 계기로 탈식민지화·탈공산화·탈러시아화 등으로 불리는 옛 소련 잔재 청산 물결이 일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이듬해인 2015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옛 소련 상징물 사용이 아예 불법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롯한 옛 소련 지도자와 장군, 러시아 문학가들의 동상 수백개가 끌어내려지거나 부서졌고 소련·러시아 위인의 이름을 딴 거리 수천곳과 마을 수백곳이 우크라이나 위인 등으로 명칭을 바꿨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전쟁을 일으킨 뒤로 이러한 작업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식 지명 사용을 금지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우크라이나어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법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가 더 많이 쓰이던 지역에서도 러시아어 사용을 거부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교회와의 단절을 위해 매년 1월 7일에 기념해오던 성탄절을 12월 25일로 바꾸는 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에 러시아는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조각상을 다시 만드는 등의 노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유된 역사를 지울 순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무례하게도 소련의 승리를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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