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주도의 마미군(馬尾裙·말총으로 만든 여성 속치마)은 15세기 해상 교역을 통해 명나라 최고의 패션도시인 강남 지방의 소주(蘇州)에 전해졌다.”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1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공동 주최한 ‘한국 복식 문화사: 한국의 옷과 멋’ 학술대회에서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을 분석한 글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구 연구위원은 “조선 여성들이 즐겨 입던 ‘마미군’이 과거 중국 상류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며 유행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복이나 갓 등 한국의 전통 의복 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일부 중국 누리꾼의 주장 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분석 결과인 셈이다.
마미군은 말총으로 만든 여성의 속옷으로, 조선인은 이를 치마 안에 받쳐 입었다. 겉에 입은 치마를 봉긋해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페티코트(petticoat)와 비슷하다. 구 연구위원은 “19세기 유럽에서도 치마를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말총으로 페티코트를 만들었는데, 동아시아의 말총 페티코트는 조선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조선인의 이런 패션 아이템이 과거 중국 명나라 상류층 사이에서도 유행했다는 기록도 확인됐다. 명나라 관료 육용의 ‘숙원잡기’(菽園雜記)에는 “마미군은 조선에서 시작돼 경사(수도)로 유입됐다. 처음에는 부유한 상인과 귀공자, 기생들이 입었는데 이후 귀천을 막론하고 마미군을 입는 사람이 날로 많아져서, 고위 관료들까지 입었다”고 기록돼 있다.
경사에서는 마미군을 직접 직조해서 판매하는 상인들까지 생겨날 만큼 패션 코드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경사는 흔히 알려진 북경이 아니라 강남 지역의 남경(현 장쑤성 난징시)이다. 구 연구위원은 “명의 강남지역은 중국의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이었고, 그중 으뜸은 소주(현 장쑤성 쓰저우시)였다”고 설명했다. 마미군을 기록한 사료의 필자들 모두 소주 인근 강남 지역 출신이다.
조선의 마미군이 중국 강남 지역에 처음 전해진 계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종실록에는 15세기 후반 제주도에서 생산된 말총 옷이 명나라의 강남 지역으로 유통된 정황이 드러난다고 구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제주도 수령 이섬이 배를 타고 가던 중 폭풍을 만나 강남 지역에 표류하게 됐는데, 마침 배에 있던 말총 옷을 중국인들이 구입하면서 전해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구 연구위원은 “조선 뭍의 기록과 유물에는 마미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명에서 마미군 유행지가 북경이 아니라 남경이었다는 모든 정황이 꼭 들어맞는다”고 했다.
다만 당시 명나라 정부는 마미군을 외국에서 들여온 사치스러운 의복이라고 여겨 탐탁치 않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 연구위원은 ‘숙원잡기’를 근거로 “상하이(上海) 등 강남 지역사회에서 마미군 열풍이 일면서 강남 여성은 물론, 고위급 남성 관료들까지 입어 명나라 정부에서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마미군은 15세기 말 명나라 황제 홍치제 초기 착용이 금지됐다.
구 연구위원은 발표를 마치며 “그동안 한·중 관계의 변두리에 있던 제주도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교류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중국 온라인과 학계 동향을 보면 중국이 주변국에 문화를 전파하기만 한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미군 사례를 보면 문화 상호 교류의 측면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학술대회에서는 15세기 마미군 유행에 앞서 14세기 중국에서 유행한 고려의 복식 문화와 생활 양상인 ‘고려양(高麗樣)’도 다뤄졌다.
김윤정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은 이를 분석한 발표문에서 “14세기 원 제국에서 유행한 ‘고려양’은 전근대 한중 관계에서 전례 없는 문화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인 조선시대 단령(團領), 조선 후기 여성의 패션, 조선의 갓과 모자 등을 다룬 주제 발표도 이어졌다.
재단은 “한국 복식의 특징과 역사성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 한·중 시민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단서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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