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9일 나흘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끝내며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중은 핵심 현안인 반도체 관련 규제에서 갈등을 해소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이견을 관리하기 위한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베이징에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디커플링은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실행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디커플링과 공급망 다양화는 분명히 구분된다”면서 미국의 전략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는 디리스킹(de-risking·탈위험화)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미·중 관계를 초강대국의 충돌 프레임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리는 양국이 모두 번영하기에 충분할 만큼 세계는 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했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미국의 경제 사령탑인 옐런 장관은 지난 6일 베이징에 도착해 리창 총리, 허리펑 부총리, 류허 전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장관) 등 중국 경제 라인 핵심 인사를 모두 만났다. 양측 모두 이번 협의가 솔직하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상대를 겨냥한 반도체, 광물 수출 통제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신호는 보내지 않았다.
AP통신과 신화통신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전날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허 부총리를 만나 “미국은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표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허 부총리도 “국가안보를 일반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제·무역 왕래에 이롭지 않다”고 맞받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핵심 측근인 허 부총리와 옐런 장관의 만남은 만찬까지 이어지며 6시간가량 진행됐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와 반도체 수출 제한,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등의 문제에선 진전이 없었던 셈이다. 다만 허 부총리는 미·중 갈등을 격화시킨 지난 2월 정찰풍선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교위급 교류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재무부 관리들은 애초 구체적인 돌파구 마련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고 보도했다. 재무부 관계자도 “양국 간 대형 분쟁들에 관한 합의는 예정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민감한 기술에 대한 해외 투자를 억제하는 행정명령을 이르면 7월 중 발표할 수 있다”며 “양국 관계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재개된 고위급 교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AP통신은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가 다음 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방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