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연금 65만원가량을 받아 생활하는 김모(33)씨 부부는 지난 4월부터 한 학습지 업체에만 매달 수입의 대부분인 61만8080원을 내고 있다. 김씨는 ‘아드님에게 꼭 필요하다’는 제안에 1년여 전부터 학습 상품을 하나 둘 결제하기 시작했는데 월 납입액도 계속해 불어났다.
2급 지체장애인 김씨는 지난해 초 학습지 업체 ‘교원’의 한 에듀플래너를 만났다. 플래너는 여섯 살이던 김씨 아들을 연신 추켜세우며 학습 상품을 소개했다고 한다.
김씨는 평소 부모의 장애 때문에 아이가 더디게 발달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남편도 청각장애가 있다. 그는 6일 “부부가 장애가 있다보니 외동아들 교육에 신경 쓰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컸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과 숫자라도 제대로 익히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려운 생활 형편 탓에 망설이는 김씨에게 플래너는 “다른 집 아이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일단 해보고 나중에 (계속할지) 결정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4개 학습 상품을 결제했다. 월 회비만 15만원 가까이 됐다.
이후로도 플래너의 상품 영업은 계속됐다. 추가 상품 결제를 유도하는 식이었다. 김씨 아들이 한글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이제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가 제2외국어가 될 것이다” “코딩 수업에 대비해야 한다”며 영어, 중국어, 코딩 등 학습 상품을 권했다. 김씨를 교원 학습지 교사로 등록해 상품 할인을 해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김씨는 지난해 2~12월 10개월 간 17차례에 걸쳐 모두 1792만원어치의 학습 상품을 결제했다. 할부 결제라 월 납입액이 61만여원까지 불어났다. 소득 하위 70%인 김씨 부부가 받는 월 장애인연금 65만여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앞으로도 갚아나가야 할 할부금이 1046만여원 남아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학습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600만원이 넘는 카드 대출까지 받았다. 김씨 남편은 집으로 날아온 대출금 청구서를 본 뒤에야 아내가 학습 상품을 무더기로 결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교원 측에 연락해 해지를 요청했지만, 교원은 계약상 해지 가능 기간이 지났다며 거부했다.
큰 돈을 들였지만, 아들 교육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됐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대부분 태블릿PC를 활용한 상품이었는데, 몸이 불편한 김씨가 아들의 학습을 돕는 건 불가능했다. 플래너는 ‘찾아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가정 방문은 한 차례에 그쳤다고 한다.
장애인소비자 피해구제 상담센터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장애인 부모 마음의 빈틈을 노린 것”이라며 “계약해지나 상품 이용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과잉영업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원 측은 국민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김씨의 남은 계약에 대해 위약금 없이 모두 해지해주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교원 관계자는 “여러 절차를 거쳐 계약 내용을 충분히 고지하고 동의를 받은 정상적인 계약이었다”면서도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위약금 없이 전면 계약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가 이미 지급한 745만여원에 대해선 “불공정 계약이 아니고, 학습 이력도 있어 환불은 어렵다”고 말했다. 과잉 영업 지적에 관해선 “(플래너 등이) 실적을 위해 부당한 영업 행위를 하는 걸 막기 위해 사내 교육과 감사 등으로 예방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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