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강릉중앙감리교회 안에서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은한 노랫소리를 따라 들어간 성가대 연습실에는 합창연습이 한창이었다. 앳된 얼굴의 합창단원들은 지휘자의 현란한 손짓에 맞춰 입을 하나로 모아 하모니를 만들었다. 조용하면서도 구슬프고, 웅장하면서도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변화무쌍한 합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들은 지난 3일 개막한 2023 강릉 세계합창대회의 초청팀인 보그닉 소녀합창단이다. 우크라이나 소녀 40명으로 꾸려진 보그닉은 우크라이나의 종전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지원공동대책위원회와 한국교회봉사단, 강릉세계합창대회조직위원회의 도움으로 지난 1일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쟁으로 하늘길이 끊겨 수도 키이우에서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이동해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이어 바르샤바에서 다시 13시간 비행한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보그닉 지휘자인 올레나 솔로비(45)씨는 “음악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앞선다. 우크라이나 소녀들의 합창을 통해 평화를 염원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인 니콜라이(37)씨는 보그닉 방한을 위한 가교역할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다양한 지원활동을 펴고 있는 김태양 우크라이나지원공동대책위 사무총장과 지난 1월 보그닉을 초청하기로 마음먹고 보그닉 방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니콜라이씨는 “우크라이나 정부도 전쟁 상황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한다는 생각에 많은 부분을 지원했다”며 “보그닉 방한은 정말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이 모든 일들이 기적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유와 평화, 국가의 존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배한다면 주변 국가들의 안보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손을 놓지 말고 꼭 붙잡아달라”고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남양주참빛교회 목사)은 “전쟁 상황 속에 주어진 시간이 6개월에 불과하고 재정상황도 좋지 않아 보그닉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보그닉이 우크라이나에 돌아갔을 때 정말 기적처럼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리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전쟁 상황 속에서도 연습을 늦추지 않았다. 단원들은 연습을 하다가 공습경보가 발령하면 피했다가 경보음이 잦아들면 건물 위로 올라가는 등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대피소에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까지 폭격을 피해 숨어 있어야 했다.
단원 4명은 가족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터라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카테리아(14)양은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아버지가 참전 중이라서 지금까지 두 번밖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살고 있는 할머니도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단원들은 불꽃놀이 폭죽 소리에도 전쟁의 공포를 떠올릴 정도로 일상이 무너진 상황이다. 세계합창대회 개막일인 지난 3일 불꽃놀이를 본 루키야(12)양은 “전쟁 전 명절이나 축제 때 볼 수 있었던 불꽃놀이는 정말 멋진 이벤트였다”며 “하지만 이번 불꽃놀이는 전쟁의 포화를 떠올리게 했다. 무섭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보그닉은 세계합창대회에서 평화를 노래한다. 이를 통해 종전과 세계 평화를 기도할 예정이다. 보그닉은 세계합창대회가 폐막하는 13일까지 축하·우정콘서트, 폐막식 무대에 오른다. 14일에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로 발길을 옮긴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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