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방신실의 성공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Է:2023-06-01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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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골프를 구해낼 난세 영웅
스폰서 KB금융그룹은 든든한 버팀목
목표인 세계1위까지는 보살핌 더 절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KLPGA투어 E1채리티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둔 방신실(가운데)이 부모님과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KLPGA제공

‘내화외빈(內華外貧)’

한국여자골프의 현주소로 이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국내 KLPGA투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한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의 성적은 예전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원인들을 얘기한다. 전통의 골프 강국인 미국의 강세에다 태국과 대만, 중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약진 때문에 한국 여자 골프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는 이른바 외부 요인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보다는 ‘국내 최고가 세계 최고’라는 진취적 사고는 오간데 없고 국내 최고 자리에 안주하려는 우물안 개구리식 경쟁의식, 즉 내부 요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한국여자골프가 위기임은 분명하다. 중국 역사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 때 공자와 노자처럼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 한국 여자 골프에도 그런 영웅이 출현했다.

‘괴물 루키’방신실(19·KB금융그룹)이다. 그가 골프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에 열렸던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리스F&C KLPGA 챔피언십 마지막날 최고 ‘320야드’ 등 평균 280야드의 장타를 펑펑 날리면서 부터다.

방신실은 대회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트레이드마크인 장타를 앞세워 꼬박꼬박 우승 경쟁을 펼쳐 팬층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시즌 다섯 번째 출전만에 우승 물꼬를 텄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E1채리티에서 데뷔 첫 승을 차지한 것. 그것도 사흘간 한 차례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투와이어였다. 그만큼 그의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방증이다.

뿐만 아니다. 그 우승으로 방신실은 정규투어 5개 대회 출전 만에 통산 상금 2억 원을 돌파(2억7889만 원)했다. 이 부문 최소 대회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최혜진, 조아연, 박민지가 보유한 6개 대회였다. 방신실은 그 자체만으로 쟁쟁한 언니들을 뛰어 넘은 것이다.

그의 우승이 더욱 빛난 이유는 또 있다. 골프 선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갑상샘 항진증을 극복하고 거둔 것이어서다. 방신실은 2년전에 이 질병 판정을 받았다. 체중이 10kg 이상 빠지고 극심한 피로, 호흡곤란, 무기력증까지 겹쳤다.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으로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시드전에서 기대 이하인 40위에 그쳐 조건부 시드 신세가 된 것도 그 영향 때문이었다. 꾸준한 관리 덕에 지금은 병세가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도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다.

올 시즌 많아야 10개 대회 정도 밖에 출전할 수 없었던 방신실은 이번 우승으로 오는 9일 개막하는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부터 남은 시즌 전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연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기까지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노력이 가장 컸다. 가공할만한 비거리도 그 노력의 결실이다. 방신실은 지난 동계 전지 훈련 때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매일 스윙 스틱을 붙잡고 씨름을 했다. 그 덕에 스윙 스피드가 빨라져 250야드였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30야드 가량 더 늘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후원사다. 방신실의 스폰서는 KB금융그룹이다. KB금융그룹 스포츠단의 비인기 종목과 유망주 우선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아마추어 신분이던 작년 초에 방신실과 계약을 체결했다.

KB금융그룹은 ‘스포츠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전해 드립니다’라는 슬로건으로 골프, 농구단, 배구단, 사격단을 현재 운영중이다. 여기에 수영, 기계체조, 육상,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스켈레톤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도 후원하고 있다.

그 중 골프는 방신실 외에 LPGA투어서 활동중인 박인비, 전인지, 나타크릿타 웡탑위랍(태국), KLPGA투어의 이예원, 안송이, 그리고 아마추어 이정현, 박예지, 이정위 등이 패밀리다.

KB금융그룹이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에 4개의 미니투어 형식으로 치러진 KB국민은행 스타투어를 출범하면서다. 당시 마지막 대회였던 왕중왕전이 현재 K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이다.

스타투어가 출범하면서 KLPGA투어는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하면서 여자 골프의 인기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KPGA코리안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과 여자아마추어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의 선수 후원은 다른 후원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영원히 간다는 이른바 ‘가족주의’다. 10년 이상 후원을 이어오고 있는 박인비와 안송이가 좋은 예다.

이는 윤종규회장의 평소 경영철학으로써 선수들에게 엄청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져다 주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운동에만 전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방신실이 이른바 우승 뒷풀이로 분주히 움직이려 할 때 윤종규회장은 그 보다는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갖고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그 또한 그런 맥락에서였다.

KB금융그룹 선수 후원의 또 다른 점은 지나친 상업성 배제다. 후원 선수는 모자 전면에 회사 로고만 부착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선수들이 감내해야할 부담의 무게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대신 KB금융그룹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게 딱 하나 있다고 한다. 다름아닌 선한 영향력이다. 박인비가 많은 ‘인비 키즈’를 탄생시켰듯이, 안송이가 유년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곧게 성장했듯이, 그리고 방신실이 병마를 이겨내고 차세대 한국 여자 골프의 구세주로 우뚝 선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부모님과 같은 든든한 후원사가 있기에 골프팬들이 방신실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큰 지도 모른다. 방신실의 롤모델은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라고 한다. 강한 멘탈과 성실함을 닮고 싶어서란다.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방신실은 생애 첫 우승으로 이번주 발표된 세계랭킹이 110위로 도약했다. 롤 모델인 고진영을 따라 잡기 위해선 109계단을 더 올라서야 한다.

방신실이 세계 최고의 선수로 발전하기까지는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스폰서, 팬들 모두가 그를 도와주는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야 한다.

잊어서는 안될 것은 그의 질환은 완치된 게 아니라 다소 호전된 상태라는 사실이다. 그는 아직 아프다. 따라서 가급적 스트레스를 주지말고 그가 써내려갈 새로운 골프 역사의 끝이 어딘가를 즐기면서 지켜 보도록 하자.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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