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8] 신유의 기적

Է:2023-03-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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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GBC 미주 복음방송 개국을 위해 부족한 사람을 초창기 멤버로 참여케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때 상황은 프로그램 담당자가 섭외로부터 녹음과 편집, 선곡, 큐시트 작성 등의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특별히 ‘새롭게 하소서!’ 같은 경우는 반드시 녹음과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아무리 유명한 부흥사라 할지라도 막상 마이크를 켜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방송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고로, 매일 나가야 하는 프로그램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섭외하고 녹음을 해야 했고, 그 중의 1/3은 걸러진다. 해서, 간증 자가 누구이든 아예 녹음한다고 꼭 방송되는 것은 아니라고 녹음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교회에서 녹음해서 보내주는 목사님들의 설교도 통째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니 편집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공기가 차단된 녹음실에서 대여섯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부득불, 1993년 10월에 사표를 내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얼굴도 볼 겸 건강검진을 받아 보려고 서울에 나가게 되었다.

음악학원을 하는 큰언니네로 들어갔다. 매일 둘이서 예배를 드리고 밤이면 그동안 겪은 일들을 서로 나누게 되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막상 형제들이 속 깊은 이야기들을 하고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엔.

맨몸으로 미국에 들어간 지 어언 10년, 머리카락이 먼지같이 되고 얼굴이 누렇게 떠서 그렇게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고, 혈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동생과 언니가 안타까워하며 나를 보살피고 회복시키려 애들을 썼다. 며칠 후에, 박종면 전도사(나중에 목사 안수)가 인도하는 요한선교단에서 ‘3박 4일 성경통독 66권’ 훈련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주저 없이 거기에 등록하여 54회 성경통독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장시간을 앉아있기가 쉽지 않았다. 이어서 55회, 56회 집회에도 참석했다. 집에서는 가슴에 쟁여 두었던 이야기들을 언니와 밤새 나누게 되었고, 함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말씀을 계속해서 읽는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종합적으로 나를 치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면서도 끙끙 앓더라” “너는 자면서도 방언으로 기도하니?” 하던 언니. 나도 모르게 기침이 잦아들었고 가슴이 뜯겨 나가던 고통이 그쳤다. 먼지같이 푸석하던 머리카락에 윤기가,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왔다. 몸에 힘이 생겨서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 성모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처음에는“암?” 고개를 갸웃거리던 담당 의사가 다음 검사 후에는 “유방 섬유선종?” 하더니, 한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한 달 후에 다시 검사를 받은 결과는 “대체로 양호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거의 3개월이 된 1994년 1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리진 지진 사태를 막냇동생에서 TV 시청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노인아파트에 살고 계시던 나귀봉 권사님께서 아파트가 흔들리자 놀라셔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다가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연세가 90이 되셨으나 얌전하고 고운 분이셨다. 심방을 간 적이 있는데, 집 안이 새색시 방같이 정갈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장례비 $10,000.00을 보자기에 돌돌 말아 싸서 허리에 묶으신 채로 돌아가셨다네.

기껏 살아야 3개월 정도라고 생각했던 그 3개월 만에, 성경 말씀을 여덟 번을 통독하고 다시 살아나서 캘리포니아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에 큰 아이는 Fuller Seminary를 다니고 있었고(그 학교 동네인 패사디나에서 거주), 작은 아이는 Biola대학교 기숙사에 거하고 있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편 119:92) 신유의 은사를 받은 주의 종이 병자에게 안수하여 병을 낫게도 하거니와 곧 하나님이신 “말씀”이 친히 안수하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가 있다.

<부서진 오른쪽 엉덩이>
2003년 1월 6일, 나의 작은 딸에게서 딸이 태어나고 곧바로 일해야만 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I need your help, mom!” 다급한 S.O.S를 받게 되었다. 기도를 드려보고 말 것도 없이 마음을 결단하고 딸과 합치게 되었다.

아무렴, 나는 엄마가 10년을 앓다가 52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엄마의 도움이 절실할 때에도 전혀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 너는 이렇게 멀쩡한 엄마가 있는데 당연하지! 아이들 집으로 들어가 1년간을 사역과 병행하다가 2004년도 3월에 작은 아이네와 함께 샌안토니오, 텍사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LA에서 산지 21년 만이었다.

여기에서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 하나. 텍사스는 집값이 싸다. 당시 한국 돈 2억도 채 안 되는 돈으로 3000 스퀘어피트(83평)나 되는 이층집을 사서 들어갔다. 집값은 어느 지역보다 저렴하지만, 재산세가 3%나 되어 렌트비가 비싼 동네라, 같은 금액으로 렌트대신, 막 짓고 있는 새집을 사는 편을 택하게 된 것이었다.

2021년은 그 지역에 폭설과 혹한이 닥쳐서 며칠씩 전기가 끊어진 적도 있지만, 원래 그곳은 엄청 따가운 햇볕이 있는 지역이다. 여름에는 24시간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겨울이라 할지라도 얼음이 어는 경우는 없었다.

2007년 겨울의 어느 날 새벽, 지난밤에 미처 내놓지 못한 쓰레기 봉지를 내놓으려고 차고 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발이 미끄러진다 싶었는데 몸이 공중에 떴다가 시멘트 바닥인 Drive way에 그대로 나가떨어지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 가운데 유리같이 반짝이는 온 바닥들. 원래 이 집이 다른 집보다 높게 앉아 있어서, 길 건너편의 2층이 이 집의 1층보다 낮았다. 그만큼, Drive Way가 꽤 경사가 져 있는 상황.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엉덩이뼈가 바스러졌을 것 같았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 어두웠고 하늘엔 별들이 총총한데(산꼭대기를 밀어서 집들을 지어 놓은 곳이라 사슴들이 아직도 자기들의 주거지인 줄 알고 온 가족이 유유히 산책하는 동네), 그대로 주저 앉은 채 하나님께 소리쳐 부르짖을 수밖에.

“하나님, 내 엉덩이뼈가 산산이 부스러졌을지라도 저를 지으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래대로 복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계속>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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