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26·하나금융그룹)가 지난 19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아람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총상금 500만 달러)에서 우승했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아들 정준씨와 결혼 했다. 이번 우승은 결혼 뒤 출전한 첫 대회 우승이자 작년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 이어 2경기 연속 우승이다.
리디아 고의 사우디 대회 우승은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LPGA투어 ‘코리안 시스터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1988년 고 구옥희 프로가 스텐더드 레지스터에서 첫 우승을 거둔 이후 작년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전인지(29·KB금융그룹)까지 지난 35년간 총 181승을 합작했다.
단순히 합작 승수만 놓고 본다면 미국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작년을 제외한 최근 10년간 통계로 보면 한국여자골프는 세계 여자골프의 맹주였다. 특히 2015년, 2017년, 2019년에는 전체 투어의 절반 가까이인 15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롤렉스 여자골프 세계랭킹은 ‘톱5’를 비롯한 ‘톱20’에 절반 이상이 한국 선수였다. 그러나 작년에 역대 최악인 4승에 그치면서 이번 주 발표에서 세계랭킹 상위 20위 이내에 5명 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LPGA투어는 지난 1월 힐튼 그랜드 보케이션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를 시작으로 올 시즌 대장정에 들어갔다. 최근 2년간 우승자들만 출전하는 ‘왕중왕전’ 성격의 개막전에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출전하지 않았다. 출전 자격이 있는 선수가 많지 않은데다 유자격자도 부상 등을 이유로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 선수들은 지난 6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전인지(29·KB금융그룹) 이후 역대 최장 타이인 17개 대회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에 앞서 2013년 10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차러진 17개 대회서 무관에 그친 바 있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중심에서 변방으로 전락한 현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은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게 원인이다. 수 년전만 해도 국내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앞다퉈 스스로 ‘골프를 하는 목표는 LPGA투어 진출’이라고 했다. 특히 국내 1인자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고 태평양을 건넜다.
박세리(46)를 시작으로 김미현(46), 박성현(30·솔레어), 김세영(30·메디힐), 전인지, 김효주(28·롯데), 고진영(28·솔레어), 이정은(27·대방건설), 최혜진(24·롯데) 등이 그런 경우다. 한 마디로 KLPGA투어는 LPGA투어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이 했던 것이다.
그랬던 시류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투어가 LPGA투어 인기를 능가하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면서다.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LPGA투어 진출을 꺼려하거나 가더라도 오랜 시간 고민을 하는 추세로 변한 것이다.
집단 무기력의 원인은 또 있다. 그동안 구심점 역할을 했던 박인비(35·KB금융그룹), 박성현, 고진영, 김세영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부진하다는 점이다.
LPGA투어 통산 21승을 기록 중인 박인비는 오른손 중지와 손바닥 부위 통증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오는 4월말 출산 예정이어서 투어 복귀 시점 자체가 현재로선 언제가 될지 모른다.
고진영은 고질적인 손목 통증, 김효주는 담 증세, 전인지도 우승 전까지는 어깨와 쇄골 부위 통증에 흉곽출구 증후군으로 고전했다. 박성현은 장기간 슬럼프로 인한 자신감 결여가 부진 원인이다.
‘천재골프 소녀’라는 닉네임으로 프로 데뷔 전부터 각광을 받았던 리디아 고에게도 기나긴 슬럼프 기간이 있었다. 2017년에 역대 최연소인 17세의 나이로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리디아 고의 추락은 끝이 없었다.
리디아 고는 LPGA투어서 통산 19승(메이저대회 2승 포함)을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14승은 2018년 이전에 거뒀다. 2018년에 1승에 그친 뒤 2019년과 2020년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2021년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서서히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작년에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 등 3승을 거둬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리디아 고의 부활은 LPGA투어 ‘코리안 시스터스’로서는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만 하다. 그는 더 나은 골프를 위해 자신의 이름만 제외하고 싹 다 바꿨다. 그것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리디아 고는 자신의 부단한 변화 시도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리디아 고의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도 본받을만 하다. 그가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우리 선수들과 달리 골프에 ‘올인’하기 보다는 골프를 즐긴다는 점이다.
결혼도 리디아 고의 골프가 만개한 이유 중 하나다. 반면 LPGA투어서 활동하는 우리 선수 중 결혼한 선수는 박인비, 허미정, 박희영, 최운정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리디아 고는 사우디 대회 우승 직후 “남편의 외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인도 시인 타고르는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우리 선수들과 부모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LPGA투어 한국 선수들은 오는 23일 태국에서 열리는 LPGA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서 ‘17전18기’에 도전한다. 이 대회에 한국 선수들은 총 15명이 출전한다. 리디아 고도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우승에 도전한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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