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 전 발생한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당시 피해자에게 권총을 쏴 살해한 주범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나상훈)는 17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승만(53)에게 무기징역을, 이정학(52)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이승만에게 20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내리고 이정학은 10년간 부착할 것을 명했다.
피고인들은 지난 2001년 10월 15일 새벽 대전 대덕구의 한 골목길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훔친 승용차로 들이받아 쓰러뜨리고는 권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들은 약 2달 뒤인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영업본부 지하주차장에서 은행 출납과장 A씨에게 권총 3발을 발사하고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왼쪽 가슴과 허벅지 등에 총상을 입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피고인들은 범행을 대체로 모두 시인했지만, 자신이 A씨를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인정했던 이승만이 “총을 쏜 것은 이정학”이라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승만의 진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승만에게 사형, 이정학에게는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도 진술을 번복한 이승만보다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내놓은 이정학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범죄 전력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았던 이정학보다 군 수색대 출신인 이승만에게 실탄 사격 경험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정학은 범죄 전력으로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에 총기에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이승만은 사단 수색대대에서 군복무를 마쳐 총기에 익숙하고 실탄사격 경험도 풍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중 한명의 진술에 따르면 ‘권총을 사용한 범인이 양손으로 총을 감싸며 피해자를 겨눴다’고 했다”며 “탄환 한발은 숨진 피해자의 몸 옆 부분을 관통하고 한발은 허벅지를 관통했다. 권총을 사용한 범인은 비교적 정확한 조준 사격으로 좁은 피탄체를 피격한 것이고 이는 실탄 사격에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범행 전반을 들여다 봤을 때에도 이정학의 진술이 비교적 일관되고 증거와도 일치했다고 재판부는 강조했다. 또 이들의 지인이 ‘이승만이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성향’이라고 진술한 만큼 이승만이 살인을 직접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공동지인의 진술에 따르면 ‘이승만은 잔머리가 좋고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편이고 이정학은 따라만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며 “이는 이정학이 진술한 두 사람의 관계와도 일치한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승만이 가져간 007가방을 A씨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점도 이승만이 직접 권총을 쏴 A씨를 살해한 정황 중 하나라고 봤다.
재판부는 “고인이 된 피해자는 양도성 예금증서 등 중요 서류들이 든 007가방과 현금가방 중 007 가방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007가방을 갖고 간 사람이 총을 쏜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만 역시 007가방을 자기가 가져갔고 이정학은 현금수송용 가방을 챙겼다고 진술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은 동종 전과가 없지만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해 주도하고 살상력이 높은 권총을 이용한 점, 유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이 불리한 정상이다. 또 이정학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것을 보아 개전의 정이 있는지 의심된다”며 “이정학의 경우 자백만으론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그의 진술로 피해자가 숨지는 순간까지 얼마나 정의롭고 고결하게 행동했는지를 20여년 만에 비로소 알게 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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