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곧 일어선다는 입춘(立春)이 지나니 제법 바람에 온기가 느껴진다. 유난히 매서웠던 추위를 지나온 끝인지라 설익은 바람의 온기조차도 반갑다. 그러나 온기가 도는 바람과 달리 높은 물가와 경기침체로 우리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춥다. 이 와중에 정치는 극으로 치닫고 있고, 법원마저 뇌물을 뇌물이 아니라고 우기며 고위공직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냉골이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다(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은 당나라 시인인 동방규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이라는 왕소군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나온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봄이 와도 봄은 아니리/저절로 허리띠 느슨해지는 것은/허리 날씬하게 하려던 것 아니라네.” 왕소군은 전한 원제의 궁녀였으나,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왕 호한야에게 시집을 가게 된 불운한 여자였다.
원제는 하룻밤을 보낼 궁녀를 초상화를 보고 결정했는데, 화공인 모연수가 자기에게 재물을 바치고 아부하는 궁녀들의 모습만 아름답게 그려서 황제에게 올렸다고 한다. 왕소군은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서 입궁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황제에게 간택되지 못했다. 2050년 전에도 뇌물을 바치지 않고서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나 보다.
그러다가 호한야가 한나라와 혼인 화친을 청하자, 원제는 간택되지 못한 왕소군을 흉노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흉노로 떠나가는 날 작별인사를 하러 온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본 원제는 크게 놀라 그녀를 흉노로 떠나보내기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결정된 일인지라 돌이킬 수 없었다. 후에 원제는 크게 노해 모연수를 참형에 처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해 버렸다.
그 동기가 공정과 정의가 아니라 자신을 속여서 미인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것이겠지만, 2050년 전 당나라 원제는 뇌물을 받은 공직자에 대해 제대로 응징했다. 만약, 원제가 최근 국회의원의 아들에게 준 50억원의 퇴직금에 대해 뇌물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의 상식과 달리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판사를 본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까…
호한야가 죽은 후 왕소군은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당시 황제였던 성제는 흉노의 풍습을 따르라며 거절했다. 왕이 죽으면 그 본처의 자식이자 다음 후계자가 될 이와 결혼해야 한다는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소군은 호한야 본처의 아들과 결혼해 다시 딸 둘을 낳았다.
왕소군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에 묻혔다. 당시 한나라 사람들은 초원의 풍습과는 달리 아버지의 처첩을 자식이 물려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패륜이라고 봤기 때문에 그녀는 후대 문학 작품에서 종종 비극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이렇듯 ‘춘래불사춘’에는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흉노로 시집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한 여인의 비극적 생애가 숨겨져 있다. 그나저나 국회의원 아들 50억원 퇴직금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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