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7)씨가 변호인을 통해 측근들에게 대장동 사업으로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은닉하라는 ‘옥중 지시’를 수시로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가 12일 국회에 제출한 화천대유 공동대표 이한성씨와 이사 최우향(쌍방울그룹 전 부회장)씨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공소장에는 김씨가 이 같이 지시한 사실이 담겼다.
김씨는 이들을 통해 대장동 범죄수익 총 275억원을 은닉했다. 공소장을 보면 김씨는 2021년 9월 검찰이 대장동 사건을 본격 수사하자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 자산에 대한 추징보전 청구 등의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이를 은닉하기로 했다.
김씨는 주거지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 구속 기소, 수사팀 변경, 추징보전 청구 등 수사 상황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수시로 은닉을 지시했다. 화천대유 또는 천화동인 1호에서 정상적으로 자금이 집행된 것처럼 가장해 수표를 인출한 다음 추적이 어려운 소액수표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김씨 명의의 계좌로 자금을 옮겨 부동산을 매수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이한성씨와 최우향씨, 또 다른 측근인 화천대유 대표 이성문씨 세 사람은 역할을 나눠 김씨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
이한성씨는 수표 출금과 교환을 담당했다. 최씨는 변호인을 통해 김씨에게 은닉된 범죄수익 현황을 보고한 뒤 이와 관련한 김씨 지시를 받아 전파했다. 이성문씨는 화천대유 대표로 재취임한 지난해 5월부터 은닉된 범죄수익을 관리했다.
세 사람은 김씨 사건을 변론하거나 화천대유와 자문 계약을 맺은 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아 적법한 자금 집행인 것처럼 이사회 의사록, 주주총회 의사록 등 관련 서류를 만들었다.
김씨는 2021년 11월 대장동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엔 접견온 변호사들을 이용했다. 접견 내용이 녹음되지 않고 서류 열람이나 필기가 가능한 점을 노렸다.
이한성씨, 최씨, 이성문씨 세 사람은 변호사들을 통해 김씨 지시를 받고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범죄수익을 수표로 출금했다. 출금한 수수표를 수백장의 소액수표로 교환하거나 화천대유 직원의 지인 오피스텔, 차명 대여금고, 집안 금고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분산 보관했다.
김씨는 부동산·사채 등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한성씨는 형사처벌을 우려했지만 ‘김씨 지시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익 창출 방안을 찾았다고 진술했다. 최씨도 높은 이자율로 은닉 자금을 타인에게 대여했다.
이들은 추징보전으로 천화동인 1호 계좌가 막혀 부동산 매매 잔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할 상황이 우려되자 2021년 11월 계좌에서 10억원을 인출해 A 변호사에게 결제 대금 예치(에스크로) 명목으로 미리 송금해 빼돌리기도 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추징보전에 대비해 (대장동) B1 블록의 수익금을 유동화할 방안을 상의하라”는 지시도 전달했다. 지난해 5∼7월 검찰 수사팀 지휘부와 구성원이 바뀌었을 당시에는 재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친형 등에게 보낸 범죄수익 은닉 관련 서신을 폐기할 것도 지시했다.
이씨 등은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자 자금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김씨에게 전달했다. 이한성씨는 보고서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고액권 수표는 소액권 수표로 순차 교환해 지급정지 등에 대비하는 등 재산은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키겠다’는 취지의 글도 썼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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